허가된 절명, 동부동 홀로코스트※
주영헌
날카로운 전기톱의 음계가 칡넝쿨처럼 휘어 감습니다 음계에 휩쓸린 몸들은 반 박자만에 쓰러집니다 입이 없으므로 외마디 비명이나 장송곡을 부를 수 없습니다 어정쩡한 음계로 가온음자리표를 채울 뿐입니다
허가된 절명, 죄책감을 떨쳐버립시다 죄책감은 사치입니다 교묘한 선동에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처럼 교묘하게 수긍합시다
필요는 필요를 요구합니다 저들은 우리의 필요에 없으며, 정복의 땅에서 순례자의 합창에 발맞춰 소거해야할 불필요의 대상입니다 인간은 언행일치해야 한다고 도덕책에 윤리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연은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일 뿐입니다
신벌처럼 마지막 몸까지 단호하게 저들을 절단합시다
허가된 절명, 동부동 홀로코스트
※ 용인시 동부동 모 번지. 차를 타고 지나갔는데 산 전체가 잘려나간 것을 보았다. 저 자리에 있었던 많은 생명은 어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주영헌
2009년 계간 <시인시각> 시부문 신인상
시집 ‘아이의 손톱을 깎아 줄 때가 되었다’
‘당신이 아니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