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망각하는 시민에게 미래는 없다

  • 등록 2024.05.13 09:50:46
크게보기

오룡(평생학습교육연구소 대표/오룡 인문학 연구소 원장)

 

용인신문 | 저 개돼지만도 못한 소위 우리 정부의 대신 이란 자들은 자기 일신의 영달과 이익이나 바라면서(… ) 원통하고 원통하다. 동포여! 동포여! 1905년 11월, 황성신문의 주필 장지연은 ‘시일야방성대곡’을 썼다. 그에게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2004년 11월에는 국가보훈처가 선정하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도 선정됐다.

 

1911년 11월 2일 <경남일보>에 게재한 천장절(메이지 일왕의 생일)을 축하하는 한시에 ‘일왕을 태양으로, 일제를 동양의 중심’으로 묘사했다. 장지연은 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에도 친일 시를 여러 편 썼고 논설 주필로도 활동했다. 2010년에 이명박 정부는 장지연의 서훈을 취소했다. 후손들의 반발이 있었으나 대법원 판결로 2015년 서훈 취소가 확정되었다.

 

을사늑약과 을사오적에 상반되는, 언론 저항의 상징으로 꼽았던 논설을 쓴 장지연의 변절을 교과서는 다루지 않았다. 그가 오랜 세월 동안 애국계몽운동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로 남았던 이유는 제대로 된 역사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의 방증이다.

 

독립협회는 만민공동회를 개최하여 의회설립을 요구했다. 대한제국의 황제였던 고종은 강력하게 반대했다. 허수아비 의회조차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협회의 지지를 받아 제국을 선포한 고종은 황제의 권한을 개혁 세력을 탄압하는 데 이용했다.

 

1898년 11월, 그는 독립협회를 해산하고 주요 임원에 대해 체포령을 내렸다. 최초의 의회를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사라졌다. 물론 의회가 수립되었다 해도 대한제국은 일본에 의해 강제 병합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국가의 멸망시에 의회가 있었다면 미력하나마 국민주권이 작동했을 것이다. 이처럼 중대한 사안을 을사오적이 다수결로 합의했어도, 고종이 옥새를 찍었다고 해서 끝날 일은 아니다. 의회의 동의를 얻어야만 하는 상황에서 강제로 의회를 해산하는 일이 발생했을지도 모른다. 일본이 의회를 해산시키면서 나라를 빼앗아 간다면 정치적 부담이고 국제적으로도 지탄받았을 것이다.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지 못한 고종이 개혁 군주이기 어려운 이유가 이것이다. 계몽 군주의 자질도 부족하다. 독선과 고집은 가졌으나 강력한 지도력은 갖추지 못했다. 일본의 침략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고종의 무능함을 감추는 역사교육도 문제 제기가 필요하다.

 

오래도록 역사를 붙잡고 산다. 방송에 나오는 역사 드라마와 다큐멘터리는 빼놓지 않고 시청한다. 내가 사는 용인특례시의 역사 관련 내용도 꼼꼼하게 살핀다. 25년 동안 개인 사무실에서 역사 강의를 하다 보니 현장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듣고 있다.

 

급격한 인구 증가에 의해 특례시로 성장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용인만이 담아낼 수 있는 역사적인 경험을 알릴 필요가 있다. 한국사 교과서에 나오는 김윤후와 처인성, 조선 선비의 상징인 조광조와 심곡서원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유산이 곳곳에 남아있는 곳이 용인이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용인특례시의 매력과 특징을 담아내기 위한 고민이 필요한 이유이다. 시민을 위한 공공기관의 역사 프로그램의 개설도 시급하다. 110만 용인특례시에 제대로 된 상설 역사 강좌가 없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인근의 성남시와 수원특례시, 화성시에는 다양한 역사 강좌가 마련되어 있다. 방송에 나오는 유명 역사 강사를 초대하는 일회성의 강의는 한계가 있다.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역사 강좌의 꾸준함이 필요하다. 역사에는 생략이나 비약은 없어도 지름길은 있다. 단계를 뛰어넘을 수는 없어도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는 있다. 시민을 위한 강좌는 부족한 역사적 두께를 채우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용인시의회 의원 연구단체인 ‘용인, 역사 종교 문화 여행의 시작’에 대한 연구 용역이 눈에 띈다. 한가지 주문하자면 실제 현장에서 원하는 역사 콘텐츠가 무엇인지 파악하길 바란다. 보여주기 행정이 아닌 시민 밀착형으로 이어져야 한다.

 

“나는 생각하는. 고로 존재한다.”는 비과학적이다. 생각은 몸의 형식으로만 존재한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몸이 따르지 않을 수도 있다. 머리와 몸이 따로 놀 수 있다는 사실도 분명하다.사족 하나 : 좋은 생각이든, 나쁜 생각이든 그것은 모두 머리가 만든 생각이다.사족 둘 : 머리가 만든 생각을 몸이 할 수 있게 하자.

사족 마지막 : 용인특례시여 제대로 된 역사 프로그램, 만들 때가 됐다.

용인신문 기자 news@yonginilbo.com
Copyright @2009 용인신문사 Corp.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용인신문ⓒ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지삼로 590번길(CMC빌딩 307호)
사업자등록번호 : 135-81-21348 | 등록일자 : 1992년 12월 3일
발행인/편집인 : 김종경 | 대표전화 : 031-336-3133 | 팩스 : 031-336-3132
등록번호:경기,아51360 | 등록연월일:2016년 2월 12일 | 제호:용인신문
청소년보호책임자:박기현 | ISSN : 2636-0152
Copyright ⓒ 2009 용인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mail to yonginnews@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