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
박정대
너를 껴안고 잠든 밤이 있었지,
창밖에는 밤새도록 눈이 내려
그 하얀 돛배를 타고 밤의 아주 먼 곳으로 나아가면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에 닿곤 했지,
산뚱반도가 보이는 그곳에서
너와 나는 한 잎의 불멸,
두 잎의 불면,
세 잎의 사랑과
네 잎의 입맞춤으로 살았지,
사랑을 잃어버린 자들의 스산한 벌판에선
밤새 겨울밤이 말달리는 소리, 위그르, 위그르 들려오는데
아무도 침범하지 못한 내 작은 나라의 봉창을 열면
그때까지도 처마 끝 고드름에 매달려 있는
몇 방울의 음악들,
아직 아침은 멀고
대낮과 저녁은 더욱더 먼데
누군가 파뿌리 같은 눈발을 사락사락 썰며
조용히 쌀을 씻어 안치는 새벽,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
당신이 지금 지나고 있거나, 혹은 오래 전 지나온 청춘의 기억 속에는 어떤 섬이 떠 있는지. 사랑의 열병을 앓던 밤, 어쩌면 그렇게 보고 싶은 얼굴이 외로운 섬처럼 떠오르는지 알 수 없었다. 사랑 때문에 ‘격렬’하게 싸워 본 사람은 안다. 도피만이 사랑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그것은 결코 ‘비열’이 아니다. ‘음악 같은 눈이 내리는’ 겨울까지 기다릴 수 없다면 이 여름이 가기 전 ‘두 잎의 불면’과 함께 격렬비열도에 가보자. 나보다 먼저 다녀간 첫사랑의 소식을 바닷가 민박집에서 들을 수 있으리라.
박후기(시인) hoogiwoog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