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림을 주는 시 한 편-24|開花-김영태 시인에게|장경린

2010.12.13 10:59:24

開花-김영태 시인에게

장경린

 

아들 목우(木雨) 결혼식에서
형님이 입은 가다마이는
소매가 삶은 호박잎처럼 흐늘흐늘했지요
삐딱하게 서서,
마땅히 둘 곳 없는 시선을
가봉하듯 늘어뜨리고

저는 속이 가벼워서
결혼이라는 걸 못해봤어요
블라우스 자락에 클립으로 집어놓은 메모 쪽지처럼
건들건들 사연들을 달고 있다 보면
어느 날 블라우스는 온데간데없고
허공에
홀로 꽂혀 있는 클립
철(鐵)꽃 같아요

사람 하나 간신히 비집고 올라갈 수 있는
중국집 개화(開花)의 목조 계단은
옛날보다 더 삐걱거려요
자장면 면발은 눈에 띄게 가늘어졌죠.
불황 탓이거니 여기고

싱싱한 양파나 한 접시 더 시켜 먹으면
그게 그겁니다


 

장경린 시인을 알게 된 지도 20년 가까이 되어간다. 세월도 참! 당시 금융지에서 일했던 나는 종종 한국은행 국고과에 찾아가 쓸쓸한 섬처럼 떠 있는 그를 만나곤 했다. 그는 지금 은행일 그만 두고 대학 무용과에 출강하며 시와 희곡을 쓰고 연출도 한다. 그 무렵, 그와 함께 돌아가신 김영태 시인을 뵙곤 했다. 혜화동 로터리의 허름한 작업실에서, 혹은 중국집 탁자를 사이에 두고, 어느 날엔 공연장(김영태 시인은 무용가 이정희 교수가 호암아트홀에서 연출한 무대에 직접 올라 책상 앞에서 원고지 구기는 동작만 반복한 적이 있다)에서 뵙기도 했다. 3년 전, 암 투병 끝에 돌아가신 김영태 시인을 장경린 시인이 강화도 전등사 뒤꼍에 수목장으로 모셨다. 돌아가시기 전, 미리 가 계시던 오규원 시인 옆 자리 잎 푸른 나무 하나를 미리 봐두셨다고 한다. 지난여름, 나는 전등사 김영태 나무를 찾아가 잎사귀에 매달린 ‘그늘 반 근’을 한참 동안 치어다본 적 있다.
박후기 시인 hoogiwoog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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