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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농(愚農)의 세설(細說)

말 그대로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사람

 

[용인신문] 공자의 가르침은 대체로 하나로 요약된다. 배워서 벼슬할 것인가, 아니면 나를 닦아 남을 다스릴 것인가. 여기에는 전제조건이 있다. 바름이 그것이다. 누구를 책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흠이 없어야 하고 책잡힐 일도 없어야 하고 의혹 같은 것들과는 아예 상종도 말아야 한다. 그렇기에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매는 일도 삼가했으며 길 가다가 신발이 벗겨져도 그곳이 외밭이라며 벗겨진 신을 버려두고 갈망정 외밭에서 신 끈을 고쳐매는 일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만큼 바름에 대해 자신을 ‘앗 뜨거’워 할 정도로 검속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혹자는 왈, 그렇게 따지기 시작한다면야 주머니 털어 먼지 안날 자 몇이나 되냐며 볼멘소리할 것이다. 잊지 마라. 수많은 평범한 사람 중에는 주머니 털어도 먼지 안 나는 사람 의외로 많다. 저들 눈에는 그런 사람이 안 보일 뿐이지.

 

웅덩이에 오래 살면 그곳이 집인 줄 안다. 기독교 경전 누가복음 6장 39절쯤을 읽어가다 보면 예수께서 그들에게 또 비유 하나를 말씀하시면서 이렇게 토를 단다.

 

“어찌하여 너는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예수의 이 말은 너 자신에 대한 표층이 아닌 깊이다. 현대인으로서는 절대 불가능할 것 같은 명제를 2000년 전 로마 사형수의 감수성치고는 꽤 깊다고 할 수밖에. 그런데도 문제의 심각성은 바르지 못한 것들이 뭘 하겠다고 설레발치는데 있다. 바르지 못하면 물러나 초야에서 스스로를 단속하며 살면 좋으련만 꼭 권력을 쥐고서야 바르지 못함을 가리려는데 있다.

 

바르지도 못하면서 어찌저찌하여 권좌에까지 올랐다면 글쎄? 중용이란 책에 기록하기를 작은 덕은 냇물처럼 흐르면서 주변을 윤택하게 하고 큰 덕은 천하를 두텁게 한다고 했다. 바야흐로 또다시 청문회의 계절이 왔다. 총리 후보부터 장관 후보자에 이르기까지 창과 방패로 서로 맞서고는 있다마는 국민의 눈높이로 볼 때는 찌르는 창이나 막는 방패나 다 고만고만하다는 것이다.

 

세상천지에 바르고 바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꼭 그렇고 그런 사람들을 써야 하나? 아니 그 사람 없으면 이 땅에 사람이 없다든? 말 그대로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사람. 그런 분들 좀 총리, 장관, 후보로 모셔오면 안 되나. 공정과 상식이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