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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살고 싶다.

오룡(평생학습교육연구소 대표/오룡 인문학 연구소 원장)

 

[용인신문]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이다. 교수신문의 ‘사자성어’ 쥐어짜기라는 비판도 있지만, 과이불개(過而不改)로도 부족한 2022년이 저물고 있다.

 

과이불개는 논어 위령 공평에 등장하는 말이다.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 이것을 잘못이라고 한다.’라고 했다.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3년)에도 나온다. ‘연산군이 소인을 쓰는 것에 대해 신료들이 반대했지만 고치지 않는다는 점을 비판했다.’라는 내용이다.

 

1426년(세종 8년) 2월 15일, 한양에서 큰불이 났다. 경시서(京市署)와 북쪽 행랑 106간, 한성부의 민가 2170채가 불에 탔다. 500년 조선 역사에 발생한 화재 중에서 가장 치명적인 재난이었다. 세종은 화재 발생 시에 현장에 없었다.세종과 세자(훗날의 문종)는 군사훈련 무예 강습을 위해 강원도 횡성에 있었다. 한양에 있던 소헌왕후 심 씨가 대응을 총괄했다. 왕후는 금성대군을 임신한 상태였지만, 앞장서서 화재 진압을 지휘했다. 화재 다음 날에는 전옥서(죄수 관장 부서)와 행랑 8간, 민가 200여 채가 불탔다. 보신각 종루까지 탈 뻔했으나 겨우 진압했다. 세종에게 화재의 급보가 전달된 것은 16일이었다. 17일에 한양에 돌아온 세종은 화재의 일선에서 과이즉개(過而卽改, 허물을 즉각 고침)했다.

 

우선 조치로 부상자 치료와 이재민 식량 배급 대책이었다. 그다음은 조직을 개편해 화재 대책을 담당하는 금화도감을 설치했다. 장기적으로는 화재에 취약한 한성의 도시구조를 보완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지나치게 좁은 도로들을 정비했다. 불을 막는 담장인 방화장(防火牆)도 쌓았다. 건물 사이엔 우물을 파서 화재를 빠르게 진압하도록 했다. 종묘와 대궐, 종루에는 이동식 소화기를 비치했다.“불 지르는 사람을 잡아서 고발하는 자가 있을 때는, 양민은 계급을 초월하여 관직으로 상을 주며, 천민은 양민으로 옮겨주며 모두 면포 200필을 제공한다. 불을 지른 자의 무리 중에서 자진하여 자수하는 자에 대해서는 대명률에 ‘반란을 도모한 큰 역적이 자수한 자’에 대한 예에 의하여 죄를 사면하고, 서로 고발한 자도 사면하며 면포 200필을 상으로 제공한다.”

 

화재 원인 규명과 범인 색출에도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방화범 색출을 위해 공고문을 붙였다. 대형 참사 앞에서, 지도자가 보인 모범적인 행동이다. 원인 규명은 물론 재발 방지를 위해 신속하게 조처한 세종이 현군인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2022년 대한민국은 코로나 팬데믹에 따른 경제위기와 불평등 심화의 공포가 확산 중이다. 이런 위기일수록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결단력과 추진력, 상대를 인정하는 포용성’을 가졌다는 검사 출신 대통령이 취임한 지 200일이 넘었다.

 

누구를 위한 ‘뚝심의 정치’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기자들이 보여주는 외경(畏敬)은 과열이다. 저들의 ‘용비어천가’는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의 열정적인 전도자들을 닮았다. 현실도 지옥 같은데, 죽음 이후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는 이들을 향한 공포의 유포이다. 겁먹은 자들을 인도하는 것을 숭고한 사역자, 의식 있는 쟁이라고 착각하는 것도 ‘자유’이긴 하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가 세 번째 별에서 만난 주정꾼과의 대화이다.  “아저씨, 거기서 뭘 해요?” 빈 병 무더기와 술이 가득 찬 병 무더기를 앞에 놓고 우두커니 앉아 있는 술꾼을 보고 어린 왕자가 물었다.

 

“술을 마신다.”  술꾼은 몹시 침울한 얼굴로 대답했다. “술은 왜 마셔요?” “잊어버리려고 마신다.” “무엇을 잊어버려요?”  어린 왕자는 그 술꾼이 안쓰러웠다. “부끄러운 걸 잊어버리려고 그러지.”  술꾼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주정꾼은 잘못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잘못을 이유로 술을 마신다. 술을 처음으로 마신 원인은 잊히고 어느 순간부터 음주 행위가 원인인 동시에 결과로 순환된 것이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잘못을 알고도 고치지 않는 행위에 대한 부끄러움은 어린 왕자의 몫이다.

 

사족, 2023년에는 자랑스러운 국민으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