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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신문이 만난사람

“미술은 듣고 보고 이해하면서 느는 것”

매년 백남준을 기리는 행사… “용인의 문화 발전 가능성 무한”박숙현의더굿피플/| 한국미술관장 김윤순

   
한국 현대미술의 발전사를 함께 해온 김윤순 한국미술관 관장. 비전공자면서도 전공자 이상 가는 안목과 식견으로 70~80년대 국립현대미술관내 (사)현대미술관회 상임이사로 재직하던 시절(당시 미술계에서는 서울대 미대 출신이 맡아야 한다고 했다) 현대미술아카데미를 개설하는 등 우리나라 미술문화의 수준을 끌어올렸다.
당시 미술아카데미는 일류 강사진에 삼성의 홍라희를 비롯한 재벌가 부인들이 앞 다퉈 수강한 것으로 유명하며, 수강생들이었던 이들은 이후 호암미술관 등을 만들어 우리나라 미술 발전에 기여했다.(모 장관 부인과 언론사 사장 부인 등은 남편의 빽가지 동원해 수강하려고 했을 정도다.)
김 관장은 특히 고 백남준 선생과 미망인 구보다 시게코와의 두터운 인연으로 백남준 사후 개인 미술관으로서는 하기 힘든 백남준을 기리는 행사를 해마다 가져오고 있다. 그녀의 최근 화두는 “미망인 구보다 시게코에 대해 따뜻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김윤순 관장은 현재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그녀를 유독 우리나라만 홀대를 하고 있는 상황을 무척 안타까와 하고 있다.
김 관장을 비롯 오광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임권택 감독,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등 뜻이 있는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시게코를 주목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어 다소 안도의 숨을 쉬어보지만, 백남준 아트센터 개관식 때 미망인조차 제대로 초대하지 않은(다들 덮어두고자 한다) 우리의 현실에 슬퍼할 뿐이다.

#명예 시민증 받은 미망인 구보다 시게코
“시게코가 서정석 용인시장실을 방문해서 명예 용인시민증을 받았어요. 시게코는 단호하게 자신은 일본 사람이 아니라 한국 사람이라고 해요. 그것은 용인을 가리키는 거에요. 그녀는 백남준과 함께 평생을 같이 했고 죽은 백남준을 잡고 있는 여자에요. 그런 시게코에 대해 우리 한국이 좀 더 주목을 해야 해요. 그녀 역시 건강이 좋지 않은 상황이에요. 그녀가 명예 시민증을 받던 날 입었던 옷이 푸른색 남자 마고자였어요. 그 옷은 백남준이 돌아가실 때 입었던 옷이에요. 내가 그 옷이 백선생이 입었던 옷과 같아 보이길래 함께 맞췄던 거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백선생 돌아가실 때 입었던 옷이라며 이렇게 좋은 날 백남준과 나하고 같이 받아야 하지 않겠냐고 했어요. 그녀는 그 옷을 중요한 날 입어요.”

#시장과의 약속, 도지사의 의중
현재 백남준의 유해는 봉은사에 모셔져 있다. “시게코가 서정석 시장을 만났을 때 백남준은 불교 신자가 아닌데 봉은사에 모셔져 있다고 했지요. 그러면서 백남준 미술관이 서면 조그맣게나마 백남준 유해를 그리로 옮겨달라고 했지요. 그랬더니 시장님이 그렇잖아도 시유지에 공원 만들면 백남준 모뉴멘트를 세울 것이라면서 거기에 시게코의 이름도 넣어 주겠다고 했어요. 그리고 시게코가 죽으면 같이 모시겠다고 해서 고맙다고 했었지요. 김문수 도지사도 만난 적이 있는데 뉴욕에서 시게코가 전시한 팸플릿을 건네니 자세히 보면서 백남준 미술관에 당신 작품도 같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했어요. 그때 함께 했던 도 문화계 관계자들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에요.”

#한국에 섭섭한 심정 토로
“내가 꼭 해야 할 일은 세계가 다 인정하는 시게코를 우리가 사소한 것을 가지고 행동 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알리는 일이에요. 그녀는 플럭서스 멤버였고 역시 대단한 비디오 아티스트에요. 더구나 그녀는 백남준과 평생을 함께 한 부인이 아니에요. 그녀는 장조카인 캔 백 하쿠다 하고도 잘 지내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선 지나치게 둘 사이를 염려하고 있어요. 그녀가 최근 내게 보내온 글에 미국 독일 등 세계가 어떻게 백남준을 조명하고 있는가에 대한 리스트며 한국에 대한 그녀의 섭섭한 심정 등을 토로하고 있어요. 용인에 개관한 백남준 아트센터가 당초 미술관에서 아트센터로 변경된 점이며, 백남준아트센터 개관 때 자신이 초대 받는 과정에서 벌어진 결례가(그녀는 당시 김 관장과 울면서 통화를 했으며, 결국 그녀는 개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생생하게 적혀 있길래 과연 이 글을 공개해야 하는가를 놓고 몇 분과 의논을 했는데 미술사이기 때문에 그대로 공개해야 한다는 말들이 우세해요. 한국미술관이 지난 3주기 때 백남준과 인연 있는 인사들이 강연한 내용을 책으로 엮을 계획인데, 시게코가 보내온 글을 함께 실을 계획이에요.”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아시아(백남준)를 주제로 전시 중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백남준 3주기에 맞춰 지난 1월부터 이달 19일까지 아시아를 주제로 한 특별전을 개최하고 있다. “아시아, 동양에서 영향을 받은 작가와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는데 앤디워홀 마르쉘뒤샹 조셉 보이스 존 케이지 등 세계적인 작가들이 총망라돼 있어요. 그런데 이 전시회 도록의 표지가 백남준이에요.” 구보다 시게코 여사가 도록을 김 관장에게 보내왔다. 현재 미망인은 뉴욕 소호에 있는 백남준 작업장에서 투병하면서 혼자 살고 있다. 작업때문에 두번 유산시킨 결과다. “백남준의 작업장이 몇 곳 있지만 뉴욕 소호에 있는 500여 평의 것이 진짜에요.”

#백남준 영화화 움직임
백남준을 영화화 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허리우드와, 한국에서도 관심을 갖고 있는데, 김 관장은 백남준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기록으로 남기면 훌륭하지 않겠냐는 의견이다. 특히 최근 시게코가 자서전을 집필중인데, 그 자서전은 백남준과 시게코의 일생이 담겨있을 책으로 사실 시게코를 영화화 해도 백남준의 일생은 그대로 기록된다는 입장이다. 과연 시게코의 자서전을 어느 나라에서 누가 어떻게 활용하게 될지 궁금하다.

#백남준, 시게코와의 인연
“백남준이 해방되고 처음 한국에 왔을 때인 1984년에 가회동 한국미술관에서 처음 만났어요. 백남준의 둘째 누나 백영득이 백선생을 미술관으로 데리고 와서 소개해줬어요. 그때 마침 워커힐에 그들이 묵었는데 우리 집이 워커힐 아파트여서 저녁 같이 먹고 우리 집에서 차도 마시고 그랬죠. 백 선생은 친구 만나러 나가면서 내가 일본말을 하니 시게코와 친구해달라고 했죠. 제1회 광주비엔날레를 마치고 주요 심사위원과 외국작가들을 우리 마북동 한국미술관에 초청해 파티를 했어요. 백 선생의 주선으로 이뤄진 거였어요. 나는 1996년 정부 지원으로 ‘한국미술 새로운 감성’를 주제로 뉴욕 LA 멕시코 등에서 순회전시를 했는데 마침 백선생이 막 쓰러진 후였어요. 그때 백 선생이 유독 나만을 조용히 어느 병원으로 오라고 시게코를 통해 불렀어요. 그때 백선생은 면회사절 형편이었는데, 조그만 방에 있던 그는 웃으면서 첫마디가 “걱정 안해도 돼. 내가 머리가 살아있고 오른손이 움직이니 앞으로 20년은 끄덕 없어”였어요.”

#용인과의 인연
용인으로 한국미술관(건축가 우경국씨가 설계)이 내려온 것은 1994년이다. 80년대에 미술관 자리를 구입했을 당시는 허허 벌판에 현대가족유원지(현대연구소) 딱 하나 있었다. 함경도 함흥이 고향인 김 관장은 고향 같아 좋았다고 했다. 현재 용인은 발전 가능성이 무한하다고 했다. 용인의 문화수준은 서울의 70, 80년대 비슷하다면서 지금이 불모지이기 때문에 제대로만 하면 굉장히 빠를 수 있다고 했다. 잘못된 것을 다시 재단하고 고치는 것 보다는. 그녀는 오랜 문화적 경험을 통해 “문화라는 게 안되다가도 어느 한 순간에 굉장히 급속도로 달라지는 것”이라고 했다.

#미술은 굉장히 즐거운 것
미술은 학교 공부처럼 하는 게 아니고 듣고 보고 이해하면서 느는 것이라고 했다. 듣고 보기만 해도 흐름을 알 수 있다는 것. 문화인과 비문화인은 굳이 말을 않더라도 알 수 있다고 했다. 뭔가가 풍긴다는 것. “미술이란 굉장히 즐거운 거에요. 몸에 배게 돼 있어요. 스며든다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