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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신문이 만난사람

바다처럼 넓고 어진 ‘느림의 미학’

박숙현의 더 굿피플 / 해인규방 변인자규방공예가로 우뚝…8월 한일교류전 준비 ‘땀방울’6월엔 대통령 다룬 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 협찬도

   
 
“손바느질은 중독성이 있습니다. 여성의 아픔, 외로움을 달래며 한땀 한땀 천천히 떠가는 바느질은 규방 여인들의 한을 달래주는 탈출구였을 겁니다.”
오는 8월로 예정돼 있는 한일교류전을 앞두고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해인 규방의 변인자 선생.
단아하고 조용한 인품에서 조선 여인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그녀는 오늘날 우리 일상에서 거의 사라져버린 조각보의 꿈을 찾아 내일로 이어주고 있다.
10여년 전 암 수술로 인해 정신적 슬럼프에 빠져 있을 때 그를 슬럼프에서 구해준 것이 규방공예였다. 해인은 규방공예 강좌를 접하면서 공예의 아름다움에 깊이 빠져들었다. 심리적인 안정을 되찾게 된 것은 두말할 나위 없고 특히 색상에서 느끼는 경이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새롭게 인식하게 된 우리의 색은 생활 도처에 있었지만 그런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규방 공예, 아니 어쩌면 5방색의 매력에 흠뻑 빠져든 것인지도 모를 그녀의 배움에 대한 열망은 넓이와 깊이를 더해 가기만 했다. 이제 그녀는 규방 공예 세계에서 자리를 잡았다. 한 눈팔지 않고 꾸준하게 느림의 미학을 실천해 온 그녀는 이제 우리나라 규방 공예계에서 알아주는 주인공이 됐다.

#천을 자르는 가위 소리에 대한 기억
해인은 규방공예를 늦게 접했지만 원래 천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을 좋아했다. “아이들의 옷을 만들어 입히고 이불이며 요를 직접 만들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바느질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천을 자르던 가위 소리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어요.”

#규방공예 하면 대표적인 게 조각보
규방공예의 분야는 너무 넓다. 조각보를 비롯해 자수, 매듭, 침구류, 의복, 소품류 등 일상 생활에 연결돼 있다. 해인은 자수나 매듭이 아닌 조각보를 비롯해 침구, 의복, 소품류 등을 다룬다. “인두집이며 가위집, 자집, 골무 등 아기자기 하고 앙징스런 예쁜 소품들이 많아요. 인두집 같은 것을 보면서 규방 여인들의 섬세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어요. 작고 보잘것 없어 보이는 생활용품에 까지 일일이 예쁜 집을 만들어 주는 따스한 손길이 규방공예라고 봐요.” 규방공예는 생활용품으로 혹은 장식용으로 멋과 실용이 만나는 접점에 있다. 그렇지만 뭐니 뭐니 해도 조각보의 아름다움이 단연 돋보인다. “기하학적인 무늬의 연속으로 이뤄지는 보자기는 서구의 몬드리안 보다 앞섰어요. 예술가가 아닌 양반집 규수나 여염집 아낙들의 손에서 자투리천을 활용한 가운데 피어나는 색과 도형의 멋스런 조화는 어느 예술가의 작품보다 미에서 뒤지지 않는다고 봅니다.”

#8월 인사동 ‘복 보자기’전 및 일본 순회 전시
일본 속 한국의 섬유공예가로 널리 알려져 있는 최양숙씨가 오는 8월 인사동에서의 ‘복 보자기전’을 개최하면서 해인을 초대했다. 총 120여점이 전시되는 이번 한일교류전에서 해인과 그의 제자 작품이 20여점 선보인다. 이어 도쿄 등지에서의 순회 전시회가 잇달아 열릴 예정이어서 해인의 작품이 일본에 첫 선을 보이게 된다.
“한국의 보자기와 자수가 일본에 더 많이 알려져 있고, 일본에서 더욱 인기가 높아요. 안타까운 일이죠. 최양숙씨를 비롯한 한국작가들의 보자기 서적들이 일본에서 발간돼 한국으로 역수출 되고 있는 실정이니 입문하는 한국 주부들의 배움에 어려움이 따릅니다. 최양숙씨의 보자기가 일본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자 한국에서도 옛 보자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한국의 멋과 미를 일본이 먼저 발견하고, 작업삼매경에 빠져든 일본 주부며, 전시장 관람자가 장사진을 이루는 모습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보자기뿐만 아니라 여타의 전통공예 분야의 가치를 소중하게 다루고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는 뼈저린 자각이 든다.

#옛 담장을 천으로 표현
해인은 이번 전시에서 우리의 옛 담장을 천으로 표현하는 작품 등을 선보이게 된다. 파스텔톤의 은은한 멋이 풍겨나는 작품이다. “소재가 우리 주변에 많아요. 보도 블럭도 평범하게 보아 넘기질 않는다고 해요. 저는 개인적으로 항공에서 찍은 너른 들판을 좋아합니다.” 재질부터 디자인 색감 등을 계획에 따라 만들게 되며 작품 1개에 한 달 정도 걸린다. “보자기는 자체로도 예쁘지만 조각을 이어 배색한 것이 더욱 아름다워요. 순간순간 착상이 떠오를때도 있고 처음 의도한 면 분할과 색이 안 맞을 때도 있지요. 물론 수정 가능해요. 요새는 중국에서 재봉틀로 박아 만든 보자기들이 인사동에서 팔리고 있어서 걱정이에요. 상업성에 치여 한땀 한땀 옛 규방 문화를 이어내려는 노력이 사그라들까 노파심이 드는 거죠.”

#6월에는 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 협찬
해인 규방에 영화나 TV 드라마, 교양 프로그램 등에서 협찬 요청이 많이 들어온다. 6월에는 대통령을 다룬 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에서 협찬 요청이 들어왔다. 영부인의 취미 생활 부분에 보자기 등 규방공예가 등장하게 되는 것. 비타민 프로그램에서 상을 덮고 있는 상보자기도 해인 것이다. 2007년부터 외부 협찬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림 배운 것도 디자인에 큰 도움, 복식 공부를 해볼까
조각보 디자인을 하는 데는 역시 규방공예 배울 당시 함께 배우기 시작한 그림그리기가 큰 도움이 된다. 우연히 그림을 배웠는데 잘 활용하고 있다. 규방공예는 대학에 전공 학과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관련 학과를 알아보는 중인데 복식 중 일부가 규방공예이니 배워볼까 생각중이다. 본인 스스로도 끝없이 배우고 익히면서 용인문화원 등에서 제자를 길러내고 있는 해인. 여타 강좌들처럼 단기적 강좌가 아닌 나름대로 커리큘럼을 만들어 1년 과정의 초중고급반과 특강 시간을 마련해 제대로 된 규방공예가를 키워내고 있다. 천을 사러 서울을 일주일에 한두번 올라갔다 온다. 수강생들을 위해 천을 일일이 재단해서 준비해야 하는어려움이 큰데, 규방공예는 바느질뿐만 아니라 주변부의 일도 거의 황무지와 같아서 일할 분야가 넓다. 장애아동이나 노인들을 위해 봉사활동도 틈틈이 나가는 해인의 규방공예에 대한 사랑이 그의 호가 말하듯 바다처럼 넓고 어질다. <박숙현 | 본지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