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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신문이 만난사람

세월을 담아내는 ‘일필휘지’ 붓세상

박숙현의더굿피플|문인화가 초정 최유순

   
 
문인화 30여년…정신 세계를 담아내는 손길
“30분짜리 작품을 위해 30년 세월이 걸린다.”


누군가 문인화를 두고 한 말이다.

수십년 세월의 갈고 닦음을 통해서야 일필휘지의 붓 세상이 열린다는 뜻일 게다. 그만큼 문인화의 길이 쉽지 않음을 얘기한다.

초정 최유순 선생.
그녀는 시와 서와 화를 동시에 아우르는 문인화를 통해 세월과 세상을 낚았다.

이제 모든 것을 떨쳐버린 세계에서 유유자적하고 있다.

“문인화는 모든 장르의 꼭대기에 있어요.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죠.”

사유의 세계, 정신 세계를 화선지에 담아내는 손길이 마음의 여유를 열어준다.
초정은 지난 90년대 초 서울에서 신봉동으로 내려와 거의 문화예술의 불모지나 같던 용인에 무료 강좌 등을 통해 문인화의 씨를 뿌렸다.

“그때는 집 주변에 진달래도 지천으로 폈고 뱀도 많았고 감도 많이 열렸어요.”

한폭의 산수화 같은 곳에서 즐겁게 살면서 자연을 그려내던 것이 이제는 빼곡한 아파트 숲에 살며 그림을 그린다. 그래도 그의 집 마당에는 항아리들이 줄지어 예쁘게 놓여있고 맵시 있는 소나무 자태가 그녀의 자연을 지탱해 준다.

장대비가 내리던 날, 그녀의 작업실에서 내다본 비에 흠뻑 젖은 마당이 그녀의 그림 인생에 겹쳐지며 운치 있는 한폭의 그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즐거운 마음을 담아내요
그녀는 세월이 빗겨간 듯 대화가 톡톡 튄다. 생각이 젊고 즐겁다. 문인화에 조선 선비처럼 무슨 깊고 어려운 철학과 세계관을 담아 낸다기 보다는 일상을 즐겁게 경청하며 살아가는 삶의 태도가 그대로 그림에 투영된다. 삶의 자세도 진지한 즐거움이다. 지난해 작고한 평생의 지지자였던 남편과 함께 여행을 하면서 남원이나 전주 등을 들러 즉석 휘호대회에 참가해 수상을 했던 것 처럼 인생 자체를 여행과도 같이 긍정적으로 여기는 즐거운 관조가 깃들어 있다.

흥에 겨울 때 안주거리를 놓고 그림과 글을 일필휘지 한다. 그림이 살아 움직이듯 생동감이 있고 글과 글씨도 살아서 꿈틀댄다.

“난 꽃이 피니 차를 마셔라. 꽃피니 예쁜 벗과 함께 깔깔대며 웃고 싶구나.” 그녀가 난 꽃이 핀 모습을 보며 그림을 그리는 예를 들어주는데 아주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이 그대로 전염된다.

“글쓰고 싶은 날이 있어요. 머릿속에서 나오는 글을 한붓에 써내려 가는데 낙관자리까지 딱 맞아 떨어질 때 얼마나 기분 좋다구요.”

그녀는 송파와 용인 등지에서 여성 대상의 강좌를 많이 진행하는데 이불이나 방석, 쿠션, 카펫, 커튼, 식탁보, 가방, 베개, 병풍, 스카프 등 일상생활에 사용되는 실용적인 상품에 문인화를 접목시킨 작업을 시도 하기도 한다. 염색을 통해 격조 높고 멋스러운 작품이 탄생하면 수강생들이 많이 즐거워 한다.

#시아버지와 남편이 적극 후원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을 했다. 미술 전공을 살리지 못한 채 살림을 하면서 남는 틈틈이 서예를 배우러 다니자 시아버지가 먹까지 사다줄 정도로 후원을 했다. 자녀들이 크고, 82년 어느 날 대학동창끼리 모여 공부를 다시 하기로 하고 민이식 선생의 개인전을 보러갔다가 민이식 선생에게 그림을 사사했다. 글씨는 일중 여초 선생 등에게 사사했다. 처음 한 5년 정도는 취미로 하다가 휘호 대회에서 수상을 하자 그때부터 나도 할 수 있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기면서 온 정성을 들여 했다. 우연한 기회에 붓을 다시 잡았지만 꾸준히 끝까지 해서 오늘에 이르렀다. 초기에는 시아버지가 후원했고 그후 남편이 그녀를 전국 방방곡곡을 태우고 다니면서 공부며 대회며 심사며 모든 그녀의 작업을 후원했다. 현재 대한민국미술대전, 대한민국문인화대전 초대작가로 있으며, 대한민국문인화대전 등의 심사위원을 지내고 있다.

“먹을 갈 때는 2시간을 화장실도 안가고 갑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먹을 갈아요. 모든 처음이 먹을 가는 것인데 먹이 잘 갈려야 모든 게 잘 되지 않겠어요. 아주 정성을 들여 갈아요. 한마디로 즐거운 그림을 그리기 위한 워밍업이죠.”

“나름대로 새로운 시도도 하고 개인 작업도 하고 싶지만 이 행복을 남한테 전해줄 수 있다는 게 행복하고, 하는 사람이 다 예뻐보이니 어떻하죠. 황혼기까지 가는 데는 이보다 좋은 벗이 있을 수 없으니 문인화를 하는 사람은 가장 행복하고 외롭지 않아요.”
<박숙현 | 본지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