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용인칼럼/언론인과 골프

본지 객원논설위원

스포츠 가운데 가장 위험한 종목은 무엇일까요? 일반인들의 경우 대개 이번에 히말라야 등반도중 고미영 산악인의 목숨을 앗아간 산악등반을 비롯 스킨스쿠버, 파도타기, 자동차경주, 권투 등을 들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와 연결되는 넌센스 퀴즈 하나. 공직자들에게 가장 위험한 스포츠는? 바로 이 대목에서 센스 있는 독자는 즉답을 내놓을 것입니다. 정답은 골프. 골프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분들은 “푸른 잔디위에서 작대기나 휘두르는 데 무슨 위험 스포츠? 혹시 골프공에 맞아 죽을까봐?”라며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공직자들에게 골프는 잘못됐을 경우 몸을 다치거나 하는 신체적 위험 정도가 아니라 공직생활을 그만둬야하는 그야말로 ‘서바이벌 게임’같은 치명적 위험운동입니다. 공직사회에서 골프에 얽힌 웃지 못 할 예화는 부지기수입니다.

지난 8월 2일 접대골프 파문으로 경남지역 기관장 4명이 직위해제 등 중징계를 받은 경우가 가까운 예입니다. 창원시장, 경남지방경찰청장, 경남지역의 향토사단인 39사단장, 국가정보원 경남지부장 등 중요 기관 책임자인 이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서민 행보에 아랑곳없이 괘씸하게도(?) 기업인들로부터 골프접대는 물론 폭탄주를 곁들인 식사를 대접 받은 사실이 드러나 줄초상 났습니다.

이명박 정권 출범 초인 지난해 3월 류우익 대통령실장은 “지금 이 시점에 골프를 치는 수석이나 비서관은 없겠지만”이라고 말해 공직자들이 골프를 자제토록 유도했습니다. 그 후 금강산 관광객 피살과 북한 핵실험 등 남북 관계 경색 분위기의 영향도 있어 공직 사회의 골프는 크게 위축됐습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최근 몇몇 자리에서 골프에 대해 긍정적 발언을 하자마자 곧바로 이번 일이 일어나 약간 어리둥절합니다. 관가에서는 정부의 서민행보를 더 돋보이게 하기위해 희생양을 삼았다는 설도 있습니다.

골프로 인한 구설수는 이 뿐만 아닙니다. 참여정부 때 당시 이해찬 총리는 집중호우 와중에 골프를 쳐 비난 받더니 결국에는 2006년 철도 총파업이 시작된 3·1절에 골프 친 게 드러나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송영선 의원 등 한나라당 의원 3명은 정기국회 회기중인 2006년 9월, 더구나 평일에 피감기관인 해병대 사령부의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다 모 방송사 카메라에 덜미를 잡혀 곤욕을 치렀습니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도 산업자원부 장관으로 있던 2006년 수해 속에서 골프를 치려다가 언론에 들통 나 그냥 돌아온 일이 있고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도 지난해 북한 로켓 발사가 예정된 날 골프를 쳐 물의를 빚었습니다.

공직자나 선량님들이라고 해서 골프를 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골프를 호화사치 운동이 아니라 단순한 오락수준의 스포츠로 인식하고 있는 외국인들은 한국에서 공직자들의 골프파문이 일 때마다 고개를 갸우뚱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국에선 아직 비상시국이나 평일골프, 접대골프는 용납되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골프와 관련해 한 가지만 더 첨언하고 싶습니다. 바로 언론계의 골프문제입니다. 저도 현직 때 골프를 쳤습니다만 평기자 때는 감히 골프의 ‘골’자도 입 끝에 올리지 못했습니다. 1980년대만 해도 언론계에서 골프란 ‘부장급 이상 간부’나 즐길 수 있는 특수운동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후배들을 만나면서 고작 4~5년차인 주니어기자들도 골프를 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단순히 즐기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탐닉수준인 ‘광풍’이 불고 있다합니다. 기자들도 골프를 즐길 자유는 분명 있습니다. 취재를 위해 필요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기자들의 월급으로 거의 매주말 골프를 치다가는 패가망신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접대골프가 아니고서는 매주말 라운딩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이번 경남지역 기관장들의 접대골프 파문을 접하며 언론인들 가운데 가슴이 찔끔하신 분이 더러 있었다면 다행입니다. 일말의 양심이 있었으리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언론인의 기본적인 책무는 사회의 비리와 남의 허물을 파헤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언론인들도 스스로를 정화하는 데 주저해선 안될 것입니다. 언론인 여러분, 자기 돈으로 골프 칠 여력이 없다면 골프를 치지 마십시오. 정 골프를 치고 싶다면 기자를 관두고 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