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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 소 한 마리 잡는데도 道가 필요하거늘!

한미 FTA 추가협상, 협상의 기술부터 고민해야
포정이라는 백정이 문혜군(文惠君)이라는 왕을 위하여 소(牛)를 잡는다. 손을 대고 어깨를 기울이고 발로 밟고 무릎으로 누르는 동작에 따라 소의 가죽과 뼈가 서로 떨어져 나가며 획획 하고 울렸다. 칼을 움직이면 음률에 맞지 않음이 없었다.
포정의 솜씨에 감탄한 문혜군이 말하였다.
“아아, 훌륭하도다! 어찌 기술이 이런 경지에까지 이를 수 있단 말인가!”
그러자 포정이 칼을 내려놓고 대답했다.
“제가 귀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기술(技)이 아니라 도(道)입니다. 기술을 넘어선 것이지요. 처음 소를 잡을 때는 온통 소만 보였습니다.
3년이 지나자 소의 모습은 눈에 띄지 않았고, 지금은 마음으로 소를 대할 뿐 눈으로 보지 않습니다. 감각을 멈추고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입니다. 하늘의 이치에 의지하여 큰 틈새에 칼을 찔러 넣고 결을 따라 움직입니다. 소의 몸 구조를 그대로 따라갈 뿐입니다. 아직 한 번도 인대를 벤 적이 없고, 더구나 뼈에 닿은 적이 없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백정이라도 해마다 칼을 바꾸지만, 제가 쓰는 이 칼은 사용한 지 19년이나 됐고, 수천 마리의 소를 잡았으나 칼날은 방금 숫돌에 간 것 같습니다.”
이에 문혜군이 말했다.
“훌륭하도다! 나는 포정의 말을 듣고, 양생(養生)에 대해 터득하였노라!”
널리 알려진, 장자(莊子) 양생주(養生主) 편에 실린 ‘포정해우’라는 소 잡는 기술에 관한 예화(例話)이다.
한미FTA 추가협상 타결이 임박했다. 그런데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협상이라기보다는 일방적인 강요에 가까울 정도로 미국의 주장만 들어 있다.
우선 미국산 자동차에 대한 국내 수입자동차 환경기준 완화, 제3국산 자동차부품 관세 환급 상한 5%로 제한, 한국산 픽업트럭 수출 시 관세철폐시한 연장 등 우리나라의 양보 일색이다. 외교통상부에선 자동차를 양보함으로써 쇠고기 문제를 논의에서 제외했다며 자화자찬했지만 이 역시 궁색하기 그지없게 되었다. 늦어도 11일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타결될 줄 알았던 한미FTA 추가협상이 미국이 쇠고기 문제를 다시 들고 나오면서 난기류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미국은 현재 남아있는 ‘30개월령 미만 소 수입’ 규정과 검역분야 등을 모두 철폐한 사실상의 쇠고기 시장 전면 개방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미국 측은 쇠고기 전면 수입허용 문제를 정식 의제로 다루자며 협상 테이블에 쇠고기 관련 서류를 쌓아놓고 우리 대표단을 압박했다고 한다. 30개월 미만의 미국산 소에 대한 문제는 광우병 파동이 일 때마다 숱하게 문제가 제기된 바 있으며, 이웃 일본도 현재 20개월 미만의 미국산 소고기만을 수입하고 있다.
협상은 나라 간 전쟁과 다름없으며, 궁극적으로 실속이 있어야 한다. 정부는 G20 의장국이라는 분위기에 취해 정작 실속이 중요한 한미FTA 협상에서는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결국, 또다시 소 때문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여지를 만든 것이다.
소를 잡아먹는데 굳이 문혜군처럼 양생(養生)의 도(道)를 터득하진 못하더라도, 모름지기 군주라면 백성들이 지니고 있는 먹을거리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켜주는 ‘도리’ 정도는 갖추어야 한다. 장자가 이야기한 양생의 도(道)를 진지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도(道)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사람 살리는 정치의 기술(技), 협상의 기술이라도 지녀야 하는 것은 아닌지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