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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신문이 만난사람

“인생의 말년을 용인에서 살고 싶다”

용인신문이 만난 사람 / 한국문단의 거장 고은 시인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2011 아메리카 어워드(The 2011 America Awards)’의 수상자로 선정된 한국문단의 거장 고은 시인(단국대 석좌교수). 지난해에는 연작 시집 『만인보(萬人譜)』(전30권)를 완간했고, AP통신 등 외신이 노벨문학상 수상 유력 후보자로 보도하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고은 시인의 작품은 영미, 독일, 프랑스, 스웨덴 등 20여 개국 언어로 소개되는 등 한국문학의 지평을 세계로 넓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유럽의 문학행사 때마다 유일하게 아시아 대표 작가로 초청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 시인 게리 스나이더는 “고은은 한국문화 전체의 중요한 대변자일 뿐만 아니라, ‘지구 행성 유역(流域)’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그 순결함과 그 대담한 명징성과 그 연민의 가슴 때문에 그의 시는 한국의 시만이 아니다. 그의 시는 세계에 속한다”고 말했다.

세계의 시인으로 떠오른 고은

 

   

 

지난 14일 아침, 기자는 안성시 대림동산에 있는 고은 시인 집을 찾았다. 시인과 함께 단국대학교 천안캠퍼스를 가기 위해서다. 시인이 석좌교수로 있는 단국대에서 특강을 하는 날이었다.
문단 말석에서도 이름이 안 보이는 기자가 여러 인연으로 고은 시인과 화창한 봄나들이를 하게 된 셈이다. 그동안 각종 문학행사와 술자리에서 여러 차례 만남이 있었던지라 이번엔 직업적으로 자연스럽게 인터뷰를 요청하게 됐다.
먼저 최근 근황을 물었다.
“지금도 여러 가지 밀린 원고 때문에 매우 바빠. 5월 초에는 해외 문학행사의 초청을 받아 일주일간 체코를 다녀와야 해.” 그는 이제 한국문학사 뿐만 아니라 세계문학사에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며, 종횡무진하고 있다.
먼 여행이 피곤하시지 않냐고 물었더니 “난 원래 돌아다니는 거 좋아하잖아. 비행기타는 것도 즐거워. 애들처럼.” 젊은 사람들도 꺼리는 장거리 비행이 즐겁다니, 타고난 방랑기질의 피가 아직도 뜨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1933년 전북 군산에서 태어나 1958년 「폐결핵」이 ‘현대시’에 추천되어 문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으니 시력이 52년째다. 1952년 입산 후 10여 년 동안 수선(修禪)과 방랑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1962년 환속했다.
1970년대 이후엔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그럴수록 창작 욕구는 더욱 강해졌고, 어느 덧 세계문학사에까지 큰 족적을 남겼다. 엄밀히 말하면 고은 시인이야말로 한국 현대문학사의 1세기를 고스란히 관통한 인물이다. 시적 상상력과 규모의 방대함을 포괄한 『만인보』의 시대적 서사를 고찰해보면 누구나 쉽게 확인할 수 있으니 위대한 시인임에 틀림없다.
그는 또 문단에서는 기인으로 통한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장석주는 ”고은은 전위, 탐미, 민중, 실험, 서정을 한 몸에 아우르는 세계 유일의 시인”이라고 말한다. 그는 또 “문학 생산이라는 면에서도 고은 시인을 앞설 자가 없다. 아울러 시인의 숱한 기행과 파격은 문단에 평지돌출하는 화젯거리이며, 시인의 내면엔 천진난만과 광기와 황홀경과 로고스가 함께 소용돌이친다. 시는 이것의 분출이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변방에 머물렀던 한국문학을 세계문학의 중심으로 견인해온 힘이라는 것이다.
고은 시인은 문학의 다산성을 자랑하듯 5월쯤에는 창작과비평사에서 시집 두 권이 한꺼번에 나올 예정이다.

 

   

“한권은 그동안 써왔던 시고, 또 한권은 연애시야.” 웬 연애시집이냐고 했더니 “그동안 연애시를 안 썼잖아. 이제 한번 내보려고.”
8년째 연속 노벨문학상 후보로 떠오른 한국문학의 거장이 연애시라니. 물론 그동안에도 노래가 된 아름다운 서정시가 많다. 양희은이 불렀던 ‘세노야’, 김민기가 곡을 붙이고 이동원이 불렀던 ‘가을 편지’, 조동진이 불렀던 ‘작은배’등 주옥같은 노래 말의 주인공이 고은 시인이다. 그의 서정성은 이미 검증된 것이기에 기대가 크다.
요즘 작가들의 시대정신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시장에 포위된 것 같다”고 일축한다. 그리고 한국문학사의 전성기로는 1980년대를 꼽았다. 물론 그 시대의 중심에도 고은 시인이 있었다.
평론가 임헌영은 “고은은 1974년대부터 1980년대의 군부독재시기를 거쳐 1990년대 전반기까지 장장 20여 년간에 걸쳐 민주화와 통일운동의 최선봉에 섰던 투사이자, 서정적이며 낭만적이고 사실적이면서도 상징적인 각종 기법으로 가장 많은 양의 작품을 쓴 천재적인 시인이며 소설가요 비평가이자 에세이스트”라고 단정한다.
고은 시인이 노벨문학상 후보로 꾸준히 거론되는 이유 중 하나는 문학창작의 다산성 때문이기도 하다. 세계적인 대문호 괴테나 톨스토이, 위고에 결코 뒤지지 않는 창작품을 가지고 있다는 것. 또한 역사적인 격변의 현장에 투신한 혁명적 정열은 두보나 푸쉬킨 혹은 하이네, 마야코프스키, 브레히트, 그리고 네루다 등을 능가한다는 것이 평자들의 중론이다.
독특한 이력만큼이나 고은 시인을 이야기할 때는 예술가적인 기행(奇行)과 괴벽(怪癖)을 빼 놓을 수 없다. 그의 기행은 숱한 일화를 남겼고, 그것은 세계문학사에서도 찾기 힘든 기재(奇才)로 평가된다.

 

예술가적 기행과 괴벽의 시인
안성에 정착한 이유에 대해서는 “안성에서 30년 째 살고 있어. 그런데 이젠 마지막으로 살 곳을 찾고 싶어. 용인이 좋을 것 같아.” 왜 하필 용인이냐고 묻자 “서울도 가깝지만 무엇보다 자연이 아름답잖아. 나지막한 산도 많고 말이야.”
그가 석좌교수로 있는 단국대가 용인에 있어 더 좋단다. 솔직히 다른 여러 지방에서 문학관까지 지어주겠다며 러브콜을 보내고 있지만, 건건히 마다하고 있는 상황이란다. 용인출신 문청의 한 사람으로서 기분은 좋았지만, 세계적인 문인의 존재감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현실이 암울하게만 느껴졌다.
시인은 말끝에 비슷한 연배의 용인출신인 이웅희 전 문공부 장관의 근황에 대해 물어왔다. 현재 와병중이라 했더니 “옛날에 나보고 용인에 와서 살라고 말했었지”라며 안타까워했다. 두 사람의 이력은 1980년대 정치사에서는 극과 극이었기에 역사의 아이러니가 느껴졌다.

 

   

 

자연이 아름다운 용인에 살고 싶어
단국대 천안캠퍼스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학교 앞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예술관 4층엔 고은 교수의 연구실이 있었고, 국제문학창작센터에서 준비한 문방사우(文房四友)로 몇 장의 휘호를 직접 썼다.
이번 특강은 1980년 고 김수환 추기경의 요청으로 한국에 온 뒤 1994년 귀화한 안선재씨(본명 브러더 엔서니) 단국대 석좌교수(전 서강대 교수)가 함께 했다. 한국문학 번역가로도 널리 알려진 안선재 교수가 고은 시인 작품을 영어로 번역해 낭송하는 시간이었다.
고은 시인은 「바다 만나기」라는 주제로 “바다는 삶의 한계를 넘어서는 무한한 세계이자 만남과 소통의 장”이라며, 바다의 함축적 의미에 대해 학생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지난해에도 시인은 ‘세계작가페스티벌’에서 「바다의 시정신」이란 주제 발표를 한바 있다. 영원한 바다의 시인이 되고파하는 목소리는 아직도 가슴에 남아있다.
특강 후 학교 관계자들과 점심식사를 하면서 막걸리 한잔을 한 시인은 꽃이 만발한 정원을 보면서 “봄바람이 나고 싶은 날”이라고 말한다. 그는 분명 아직도 문학청춘임에 틀림없다. 삶 자체가 문학이기에.
어떤 이는 “고은의 시는 표절할 수 있어도 고은의 생은 표절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분명 영원한 문청으로 남아 세계문학사의 빛나는 별이 될 것이다. 안성 대림동산에 도착하자 봄볕을 따라 걸어서 집에 가겠다며 차를 세우신다. 차안에서 인사하고 기자는 시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고은 시인에게 봄바람은 또 어떻게 불어올까”를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