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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신문이 만난사람

“나무의 숨결에 문명의 혼을 새겨 넣는다”

전통서각 장인 대광(大光) 현성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국보 126호인 ‘무구정광다라니경’과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해인사 팔만대장경’등 전 세계적으로 뛰어난 목판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이후 금속활자가 들어오면서부터 목판인쇄는 자취를 감추기 시작 했고 전통 각자의 명맥도 끊겨갔다.
이렇게 잊혀져가는 각자의 이론을 정립하고 전통을 부활시킨 장인이 있다. 바로 대광(大光) 현성윤이다.

   

우리전통 서각의 우수성 알리는 장인의 열정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6월 중순, 처인구 양지면 송문리에 위치한 ‘한국 전통 서각 예술 문화원’을 찾았다. 작업복을 입은 현성윤 선생이 서각에 한창 몰두 중이었다. 안경 너머의 두 눈엔 작업에 대한 열정이 뿜어져 나왔다. 그렇다. 그는 분명 장인이었다.
한때 국민독서운동을 하던 문화원장 대광(大光) 현성윤 선생은 삼십년 전 운명과도 같은 계기로 서각과 접하게 되면서 ‘전통서각 알리기’ 외길 인생을 걸어가고 있다.
공방의 벽면은 온통 현 선생의 작품으로 빽빽이 채워져 있었다. 그중에는 추사선생의 글도 보였고, 현재 제작 중인 한글판 팔만대장경도 눈에 띄었다. 현 선생이 제작한 명성황후 기념관의 현판과 설악산 백담사의 일주문 현판, 평택 쌍룡사 현판의 사진도 볼 수 있었다.
현 선생은 “서각은 우리 민족이 표현해 낼 수 있는 최고의 예술”이라고 말한다. 우리 전통서각의 우수성은 전 세계 어느 나라 서각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창적이고 과학전인 예술성이 담겨 있다. 특히 전통 서각의 뛰어난 45도 각법은 우리들이 늘 사용하고 있는 인사 각도와 전통건축양식에서 볼 수 있는 지붕의 구조 처마의 곡선 등 생활 속에서 쓰이는 우리 민족 고유의 각이라도 한다.
우리 고유의 전통 문화 서각은 양각, 음각, 음양각, 화서각등 여러 가지 각법을 사용해 2차원적인 나무 판제에 입체적으로 표현해 내는 3차원적인 종합 예술이다. 45도 각도로 파내는 서체의 나무 미학은 그 표현 영역에 있어서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예술성에 있어 최고의 조건이 된다.
이웃나라 일본의 각은 90도라고 한다. “이 각은 직각으로 꺾어지는 각으로 공격성을 띤 각이어서 일본은 예부터 이웃나라 침공을 많이 한 것 같다”며 글에는 그 나라의 정서가 반영돼 있다고 한다.

각자장이 대광(大光)의 길을 걷기까지

현성윤 선생이 본격적으로 서각을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초이지만 이미 집안에서의 시작은 고조부 때부터이니 벌써 4대째 가업을 이어온 셈이다.
현 선생의 고향은 평안북도 연변군 백령면이다. 고조부에서 증조부로 조부까지 이어진 집안의 가업이 현 선생에게 이어 진 것. “아버지 18살 때 전쟁 통에 서울로 내려오게 됐는데 그로인해 아버지가 완전한 기술을 익히시지 못했다”며 “돌아가시면서 남기신 유언이 고향에 본인을 뿌려달라고 한 것”이라고 한다.
그날 이후부터 현 선생은 남·북통일이라는 숙원을 마음에 담고 살았다고 한다. 그는 “예전 우리 민족이 고려시대에 몽골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팔만대장경을 만든 염원처럼 팔만대장경을 한글로 풀어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은 ‘통일대장경’을 만들어 내고 싶다”며 “한민족 모두가 참여해 그 마음 하나하나의 통일 기원을 담는다면 팔만대장경만큼의 가치와 의미가 있지 않겠냐”고 말한다.

   
팔만대장경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한글 판각

그 후 한민족이 참여하여 만드는 한글대장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전통서각의 우수성과 대중화를 위한 이론 정립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해 ‘한국전통서각예술’ 이론 서적을 집필했다. 서각에 대한 교습 자료가 없는 것이 안타까웠던 현 선생이 과거 선조들이 만들어 놓은 현판 등의 서각 작품을 연구해 서각 기법을 이론적으로 체계화 시킨 것.
하지만 책이 출간된 후 곳곳의 각자장이들에게 항의를 받았다고 한다. “예전 장인들은 대부분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남들에게 알려주지 않았다”며 “그러니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인데 일부의 사람만 접하는 전통 문화인 줄 알 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여기서 모순이 생긴다고 한다. 바로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은 고려시대 팔만대장경을 국민들이 참여해 만든 것이기에 우리 국민 대부분이 서각을 할 줄 안다고 생각한다는 것. “그런데 현실은 어디 그렇습니까? 서각 자체를 생소하게 여기는 사람이 너무 많다”며 “안타까울 뿐”이라고 한다.
현 선생은 몇 년 전 지방무형문화재로 위촉을 받았으나 거절한 바 있다. 본인은 가르치는 선생으로 남고 싶지 비법을 꽁꽁 숨기고 나만 아는 장이가 되고 싶진 않았다고 한다. 자신이 무형문화재가 된다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으며, 서각을 보급하고 후진을 양성하는 선생으로 남고 싶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요즘에 들어 서각을 더 많이 알리기 위해서는 무형 문화재로의 위촉이 필요하다고 생각돼 현재 무형 문화재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현 선생이 품은 ‘정통서각 대중화’의 의지는 변함이 없다. 현 선생은 “오래전부터 추진해 온 한글 팔만대장경 판각사업이 머지않아 본격적인 사업추진으로 활성화 될 예정”이라며 “용인시에 판각교육을 위한 전용양성소가 만들어질 예정이고 강원도 백두대간 내에 장경각과 행사장이 준비되어 본격적으로 판각행사가 추진 될 계획”이라고 한다. 드디어 전 국민 모두에게 우리 전통 서각을 알릴 기회가 찾아오고 있는 것.
“국난극복의 목적하에 제작된 팔만대장경이 제작 된지 올해로 천년이 됐음에도 내용을 아는 이가 거의 없다”며 “누구나 쉽게 이해하며 읽을 수 있는 우리의 한글로 새로이 탄생하는 한글팔만대장경 판각에 전 국민이 함께 동참해 주길 바란다”고 한다.

각자의 위대한 부활을 위하여

‘서각은 서체의 해부다’ 칼과 망치를 이용해 나무를 무조건 파기만 하는 것이 아닌 붓이 간 자리와 중봉 즉 필로와 필맥을 찾아내는 작업.
그 유명한 서예가인 추사 김정희 선생의 서체가 만들어지기까지 본인의 노력도 중요했지만 올바른 선생들을 만나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추사체가 만들어진 것과 같이 그만큼 기초가 중요하다고 한다. 이처럼 올바르게 정립된 전통서각기법이 널리 알려져 현시대 사람들도 우수성을 인식하고 더 깊이 연구해 널리 보급해야 할 대상이라고 한다.
필자에게는 나무에 한 자 한 자 새겨 넣은 선생의 각자에 대한 뜨겁지만 냉철한 열정이 지금의 선생을 만든 것 같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