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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신문이 만난사람

“뭉게구름이 머물고 흘러가는 그림 같은 곳”

자연의 품에서 자연의 시를 쓰는 김종관·한영숙 부부

기와집 세 채에 정자 한 채.

하늘 아래, 산 아래, 논 밭 끝자락에, 자연을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려 놓은 듯한 네 채의 한옥은 인간의 집이라기 보다는 그냥 자연의 일부 같다. 자연에 푹 묻혀 사는 주인 부부가 부러워 마실을 가고 싶은 집.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소박하고 투박한 손맛이 깊다. 한국의 참맛이 느껴지는 집이다.

 

 
   
 

 

운학동 골짜기에 들어선 이 집은 워낙 이 동네 토박이인 김종관씨가 10여년에 걸쳐 부인과 단 둘이 지었다. 3년에 한 채씩 지은 꼴이다. “살 곳이 없어 부친이 물려준 땅에 막막하게 짓기 시작했어요. 친구가 준 통나무로 집을 지으려다보니 목수도 통나무집은 지은 적이 없다고 난색을 표했고, 설계사무소에서도 양옥집이 아니어서 설계를 못한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결국 혼자 뛰어든 거에요.”

오랜 시간 공들여 한 채씩 느리게 지은 집. 그렇지만 우리 눈에는 뚝딱 하면 한 채씩 집이 생겨난 것 같다. 도깨비 방망이가 있기나 한 것처럼. 황토 흙과 자연 상태 그대로의 통나무가 멋지게 어우러져 있다. 휘면 휜대로 손을 대지 않았다. 한옥 전문가로 거듭난 김 이사. 건축이라고는 난생 처음 해본 것이라는데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사실 아버지가 집짓는 일을 했어요. 어려서도 그게 싫어 쳐다도 않봤었죠. 그런데 나무냄새는 좋았어요. 송진 냄새가 무척 향기로왔었는데.” 뿌리, 김 이사 몸에 깃들어있던 유전자가 소나무향 가득한 집을 짓게 한 것이다. 최근에 지어진 건물은 꽃 벽, 꽃담을 둘렀다.

 

   

 

정자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눈부신 봄볕과 시원한 바람이 쉴 새 없이 들락인다. 멀리서 볼 때는 아름다운 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정자에 올라 앉으니 선계가 따로 없다. 신선이 사는 구역 같다. 경관에 취하지 않을 수 없다.

“석양이 참 좋아요. 특히 가을 노을이 아주 멋있어요.”

불심이 깊은 부인 한영숙씨가 바로 옆 밭에서 고추를 심다가 정자에 걸터앉아 잠시 쉬면서 마치 시인 같은 이야기만 한다. 김 이사가 “조금 있다가 같이 심자”고 해도 그냥 있으면 뭐하냐며 혼자 밭일을 하던 부인은 아름다운 이야기를 계속 잇는다.

“아침에는 안개가 아주 멋있어요.” “구름이 흘러가면 그냥 그림이 되요.” “산이 꼭 연꽃처럼 생겨 보이지 않아요?” “형제봉에 무지개가 걸쳐 있는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세요.”

쌍무지개가 멀리 산에 피어있는 것도 보았다며 너무 아름다웠다고 이야기 해주는 부인은 “그저 소박하게 농사 지으면서 욕심 없이 산과 들에서 나오는 것을 먹으며 살아갈 뿐”이라고 이야기 하지만 이 세상의 아름다운 것은 다 소유한 제일 부자라는 생각이 든다.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참 모습을 고스란히 다 누리면서 사는 부부. 양옥집에 정원을 아름답게 가꿨다고 자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자에 오르는 순간 자신이 가진 것이 보잘 것 없음을 금새 느끼게 될 것이다.

푸르고 광활한 하늘과 바람과 너른 들과 둘러쳐진 산을 모두 정원처럼 품고 사는 부부. 부인의 4계절 감상을 다 들어야겠다고 생각이 드는 찰라, 김 이사가 바통을 이어 바로 정자 옆의 논에 여름이면 반딧불이가 천지라고 이야기 한다. 남의 논이지만 농약을 치지 말 것을 부탁해서 반딧불이의 향연을 해마다 감상한단다. 얼마나 경이롭고 황홀할까. 칠 흙처럼 어두운 밤 일렁이는 반딧불이의 춤의 바다.

한옥 짓는 이야기를 듣는 것 보다 자연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더 좋다.

 

   

 

“아침 열시쯤이면 뱀이 개구리 잡아 먹으러 내려왔다가 오후 서너시 되면 다시 산으로 올라가요.” 뱀이 계속오니 정이 들어서 안보이면 궁금하고 다시 오면 무척 반갑다. 뱀을 징그럽고 무섭다고 하지만 건들지 않으면 전혀 무해한 동물임을 강조한다. 거미도 살고, 새도 산다. “우리 인간이 그들의 집에 얹혀 사는 거에요. 원래 주인은 그들이죠.”

벌써 한옥 3채가 지어진 모습에 남들은 집을 왜 자꾸 짓는지 궁금해 한다. 이들 부부는 집을 소유하기 위해 지은 것이 아니란다. 누구라도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을 해보고자 시작한 것이다. 부인이 세 번째 집을 지을 때 꾼 꿈도 이같은 생각을 굳히게 한다. 사람들이 끝없이 줄지어 선 기와불사의 꿈을 꾸었다. 기와 뒤편에는 불경이 가득 쓰여 있었다. 분명 남을 위해 사용돼야 할 집이라는 생각이다.

정자는 지금도 사람들이 오가다 쉬어간다. “당신이 오심은 우연이지만 마음을 나눔은 인연입니다.” 부인이 정자대들보에 쓴 상량문이 나그네를 반갑게 맞는다. 주인 부부는 커피도 마련해 뒀다. 편하게 차 한잔 마시고 가라고.

사찰음식을 맛있게 하는 부인은 장맛 좋기로도 유명하다. 지인들이 놀러 와서 장을 얻어가다가 이제 미안하다며 고객이 됐다. 장을 판매하기 시작한 이곳은 장독대도 예쁘다. 자연에서 퍼 올린 물로 담아낸 장맛처럼 욕심 없는 이들 부부의 아름다운 하루가 익어간다. 농사일을 하는 김종관씨는 문화에 관심이 많아 용인문화원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