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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의 달 인터뷰-신갈농협 강태희 대리

군인 남편의 순직'청천벽력'…유공자 아내답게 명예 지킬것

   
▲ 신갈농협 강태희 대리


"'국가유공자유족증’을 받았습니다. 남겨진 자식들과 세상 살아가는 것이 너무 막막했고 그저 우울했습니다. 문득문득 사는 것보다 죽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눈에 밟혔고 그 아이들만 바라보고 살게 됐습니다. 지금은 아이들에게 국가유공자에 걸 맞는 품위를 유지하도록 가르칩니다.”

결혼과 함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가정꾸리기에 전념했던 강태희씨는 남편의 군복무중 순직으로 국가유공자유족이란 명칭과 함께 당시 3살과 17개월이던 아이들만이 남겨졌다.

그는 생계를 유지해야 된다는 목적으로 용인농협에 입사원서를 제출, 1990년 5월 23일부로 발령을 받고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자꾸 왜 살아야하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았고 한 번 생각에 묻히면 아이들도 잊고 죽음을 생각하곤 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그는 바쁘면 일에만 전념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당시 용인대학교에 야간반으로 신설된 경영정보학과에 체력장, 예비고사를 치르고 신입생으로 입학했다.

아직 보호자의 손길이 필요했던 아이들은 직장 일을 하는 낮에는 맡길 곳이 있었지만 학교생활이 시작되는 야간에는 직접 데리고 다녀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학교를 졸업했고 승진고시를 왜 포기하느냐는 직장동료들의 의아함을 무시하고 자식들을 비뚤어지지 않도록 잘 키우는데 매달렸다.

그는 “아이들이 배워야 하는 시기에 비행이나 저지르고 다닌다면 나는 아이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라며 “혼자 키웠어도 그런 티 내지 않고 훌륭하게 커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전념하느라 승진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아이들을 고아로 만들 수 없다는 그의 신념은 아픈 것도 큰 죄가 됐다. 그는 “내 맘대로 아플 수 도 없었다”고 말했다.

악착같이 살아온 그에게 어느 날 국가보훈처로부터 모범유공자 표창이 주어졌고 다시 보훈처장으로부터 모범미망인상이 주어졌다. 혼자되고 직장생활을 모범적으로 수행한 국가유공자유족에게 주어지는 표창이었다.

이제 그는 생각이 달라졌다. 국가유공자유족이란 명예를 준 국가에 예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명예에 맞는 품위를 유지한다는 생각이다.

현재는 신갈농협에서 대리직급으로 일하는 강태희씨는 “내 나라, 내 직장이 나에게 준 명예를 생각하면 명예를 훼손한다는 것이 큰 잘못”이라며 “엄마로서 잘 자라준 아이들에게 감사하고 그럴 수 있도록 힘을 준 나라에 고마워서 앞으로 보답하는 일만 남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