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8 (목)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용인신문이 만난사람

용인고 2년 조은해의 '1000원의 행복'

종잣돈 1000원으로 껌팔이 자처
반나절 만에 8000월으로 불어나
관리원 할아버지·청소 할머니에
마음까지 따뜻한 양말 선물 감동

   
▲ 껌을 고르는 조은해 학생
지난해 12월 25일 처인구 금학로에 위치한 용인고등학교(교장 임동덕) 2학년 8반에서는 학급 활동으로 ‘1000원의 행복’이란 작은 이벤트를 실시했다.

1000원의 행복은 1000원으로 의미 있는 활동을 한 뒤 그 결과를 소감문으로 제출하는 것으로, 24일 1000원을 지급 받아 크리스마스와 주말동안 1000원의 행복을 실천하는 것이다.

1000원을 지급받은 조은해 학생은 혼자 수없이 고민했지만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 “1000원을 버스비로 사용하고 그동안 내가 다닌 요양원에 봉사활동을 하러 갈까?”, “어디 소중한 곳에 송금하거나 아니면 기부를 할까?”, “보다 뜻 깊은 곳에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도저히 혼자 답을 찾을 수 없었던 은해는 가족회의를 요청했다.

회의 결과 기부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고 봉사는 평소에도 많이 하고 있으니 크리스마스에 맞게 특별한 이벤트를 하자는 것이었다. 은해는 멀리 있는 사람보다 가까운 이웃 중에 그늘진 곳에서 묵묵히 노고하시는 분들을 찾아 위로해 드리기로 결정했다.

가장 가까운 대상자를 찾아보니 아파트상가 앞에서 주차 관리하는 할아버지와, 청소하며 폐지를 주워서 관리하는 할머니가 생각났다.

할아버지는 택배 물건도 맡아서 관리해주고 청소도 해주며 추운날씨에도 불구하고 늘 밖에서 궂은일을 도맡았다. 할머니는 언 손을 입김으로 녹이며 상가를 청소해주며 재활용쓰레기를 고르고 모아서 용돈에 보태는 분이다.

할아버지 할머니 두 분을 선택하고 선물을 준비하려니 1000원으로는 어림없었다. 처음엔 “용돈을 더 보태서 살까?”도 생각했지만 규정에 맞지 않을 것 같았다.

고민 끝에 1000원을 활용하기로 했다. 1000원으로 껌 두 개를 사고 개당 1000원 씩 팔면 2000원이 되고 2000원으로 껌 네 개를 구입해서 다시 팔면 4000원이 되고 이런 식으로 선물을 살 수 있는 금액까지 돈을 계속 부풀리자는 것이다.

   
▲ 껌을 고르는 조은해 학생
마트에서 500원 짜리 껌 두 개를 사서 시장으로 향했다. 껌팔이 소녀로 나선 것이다. “오늘따라 날씨는 왜 이렇게 추운지?” 생각과는 다르게 은해의 비장한 각오는 위축되기 시작했다.

   
▲ 껌이 팔리지 않자 절망적인 은해
“지나는 사람을 잡고 말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이런 가운데 시간은 30분이 지나고 40분이 지났다. 굳은 결심을 하고 지나는 아주머니 팔을 잡았지만 사정을 말하는 은해의 목소리는 기어들어갔다. 무슨 말인지 자신도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작았으니... 아주머니는 손을 뿌리치고 지나갔다.

이렇게 몇 번을 경험하니 떨어지는 자신감 속에서 은근히 오기도 생겼다. “사람들은 뭐가 그렇게 바쁠까?”, “어떻게 사람이 말하는데 듣지도 않고 저렇게 그냥 갈 수 있을까?”... 사람들이 야속했다. 조금은 밉기까지 했다. 이렇게 열 번쯤 실패하니 껌 값 1000원을 건질 수 있는 건지도 걱정됐다.

   
▲ 껌을 사주신 고마운 분들
드디어 열한 번째 시도, 부부로 보이는 아줌마 아저씨의 앞길을 무조건 가로 막았다. 그리고 1000원의 행복에 대한 의미를 설명하자 아줌마는 차갑고 빨갛게 변한 은해의 손을 잡아주며 1000원을 손에 쥐어줬다.
한 시간 넘게 밖에서 떨었던 은해는 너무나 고마웠고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한 시간 넘게 고생한 모든 슬픔과 원망, 서러움이 한방에 날아갔다.

은해는 “그때 기쁨이란 지금 생각해도 말로 표현할 방법이 없다”며 “그 아저씨 아줌마가 얼마나 고마운지 존경스럽기까지 했다”고 했다.

이후 은해는 목표를 달성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마음속 깊이 솟구쳤다.

이렇게 껌 두 개를 팔고나니 2000원이 다시 생겼고 2000원으로 다시 껌을 네 개 사서 팔기를 반복하니 8000원 이란 큰 금액으로 변했다. 집에서 나온 지 네 시간만의 쾌거였다.

   
▲ 선물 준비 완료
8000원으로 무슨 선물을 살까 고민하며 시장을 돌았다. 두툼하고 좋은 양말을 팔고계신 아저씨를 보고는 다가가서 얼마냐고 물었다. 아저씨는 오히려 은해에게 “아까부터 껌을 팔던데 무슨 일이 있는 거니?”라고 물었다.

은해는 1000원의 행복에 대한 의미를 알리고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드릴 선물을 고르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러자 아저씨는 기특하다며 5000원에 팔던 양말을 2000원이나 깎아 줬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주위 사람들에게 은해를 가리키며 “이런 애가 대통령이 돼야 한다”며 “선물은 잘살고 부족함 없는 사람이 아닌 힘들고 어렵게 사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 현명한 것”이라고 계속 은해를 칭찬했다.

은해는 “'1000원의 행복' 이벤트가 아니었다면 내가 이렇게 소중한 경험과 칭찬을 들을 수 있었을까?” 생각하며 양말을 구입한 뒤 편의점으로 달려가 따뜻한 두유를 샀다. 추운 날씨에 고생하셨을 할아버지 할머니를 생각하니 마음이 두근거리고 발걸음이 빨라졌다.

   
▲ 선물을 전달한 할아버지와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고생하시는 할아버지께 크리스마스 선물을 드리고 싶어서 왔다”며 준비해간 선물을 전해드렸다. 연신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만 되풀이하는 할아버지 모습을 보며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생각으로 가슴이 뭉클했다.

다음은 할머니를 찾아 갔다. 할머니는 “해준 것도 없는데 받기만 해서 미안하다”며 손을 잡아끌어 집안으로 인도했다. 추운 날씨여선지 따듯함이 두 배로 다가왔다.

   
▲ 선물을 받고 고마움에 화분을 선물하신 할머니
타주는 유자차를 마시며 재밌는 이야기도 들었다. 키우던 화초 중에서 예쁜 꽃 선인장과 허브도 선물 받았다. 헤어질 때는 눈물을 보이며 손주 같다고 자주 놀러오라는 말에 외롭게 혼자 계실 할머니를 위해 자주 찾아뵙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이틀에 걸쳐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을 했던 은해는 “발로 뛰는 경험이 없었다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어린아이 수준이었을 것”이라며 “목표를 달성한 지금은 왠지 자신감이 넘치고 어른들의 노고를 이해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추위와 함께 경험한 네 시간이 나를 단련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며 “이제부터는 이웃과 함께 서로 돕고 함께하는 사회를 위해 어려운 일이라도 솔선수범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끝까지 성공의 달콤함을 경험한 은해는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부딪치면 해낼 것 같다”며 “고생하는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껌을 판매할 때 받았던 따뜻함을 돌려줄 수 있는 마음을 키워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