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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엽의 사진 창작 노트1

이상엽의 사진 창작 노트1

 

땅의 풍경으로 들어가다

 

<용인신문>과 함께 처음으로 내가 사는 동네, 용인에서 강의를 했다. 찍는 법 보다는 사진을 읽는 눈을 키우기 위한 자리였다. 내친김에 원래 연재하던 지면을 통해 평소 내가 생각하는 사진 이야기를 해보기로 했다. (필자 주)

 

사실 난 풍경사진에 큰 관심이 없었다.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는 것을 업으로 삼은지 꽤 됐지만 풍경은 내가 찍고자 하는 사람의 배경이 되어줄 뿐 풍경 그 자체가 내 목적이 된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호기롭게 무슬림반군을 찍기 위해 민다나오의 밀림을 헤치고 다닐 때도, 동티모르의 독립을 찍기 위해 UN의 쓰레기장을 배회할 때도, 수십만이 죽은 원촨의 골짜기에서도 그저 풍경은 거기 있었을 뿐 내가 쫒아 다닌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부조리한 질서를 프레임 안에 고정시키는 희열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어느새 풍경이 내게 왔다. 그것은 나이 먹음이나 인간에 대한 환멸 따위하고는 관계가 없다. 카메라 든 자가 필연적으로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공간과 시간에 대한 회의의 순간이기 때문이었다.

 

미술에 비해 얼마 되지 않은 역사(니옙스가 최초의 사진을 찍은 것은 1827년이다)를 지닌 사진은 두 개의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기록물을 양산했다. 하나는 사람의 모습이고 또 하나는 풍경이었다. 중세 이후 미술 분야에서도 가장 각광받던 초상화와 풍경화는 사진에서도 여전히 힘을 발휘했다. 특히 풍경사진은 회화의 연장선에서 살롱사진의 중심이 되었고, ‘사진분리파 운동이후에는 순수사진의 결정체가 되었다. 폴 스트랜드에서 에드워드 웨스턴 그리고 눈을 의심케하는 자연 풍경의 절정이었던 안셀 아담스의 흑백 사진까지 풍경은 미술관에서 안방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우리 곁을 장식해 왔다. 하지만 이 사진들은 자연에 대한 해석만 있을 뿐 비평이 없었다. 어쩌면 순수자연에 대한 비평이라는 것은 인간 인식의 한계이자 불경에 해당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풍경은 진화했다. 리 프리들랜더의 도시풍경과 조엘 마이어로비츠의 인공구조물 풍경은 강력한 비평이 담긴 풍경사진으로 이해됐다. 그저 풍경 사진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50년대 이전 사진에 대한 이해 수준에 멈춰있는 것이다.

 

요즘 나는 풍경 사진을 찍으러 다닌다. 직접적인 계기가 있다면 강운구선생의 작업 <저녘에>가 될 것 같다. 선생은 이미 원로인지라 당신이 인식하는 우리 땅은 농민의 땅이었다. 그것은 다시 돌아 올 것 같지 않은 빈티지에 대한 향수였다. 하지만 나는 아직 젊다. 내가 인식하는 우리 땅은 찟겨지고 갈라지고 파헤쳐지는 고통받는 땅이었다. 그 땅을 기록하러 돌아 다녔다. 서울 강북의 뉴타운 재개발 지역을, 업자들의 모래 채취로 사라져가는 이작도의 풀등을, 그리고 헐벗은 산과 인간의 과소비로 물이 말라가는 태백과 안동을 돌아 다녔다. 그곳에서 거대한 풍경을 봤다. 안동댐이 말라버렸다. 그리고 그곳은 불모의 사막처럼 변했다. 멍하니 그 황당한 풍경을 바라보다가 멀리 신기루처럼 어른거리다가 폴짝폴짝 뛰어가는 것을 보았다. 처음에는 토끼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이 거대한 풍경이 만든 착시였을 뿐이었다. 그것은 작지 않았다. 맹렬히 달리더니 말라버린 댐의 바닥을 지로질러 내 앞 100미터쯤에 멈췄다. 그리고는 빤히 쳐다본다. 고라니였다. 물을 찾아 목숨을 걸고 인간 앞에 선 것이다. 나 역시 멍하니 고라니를 쳐다봤다.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힘겹다. 그 사이 고라니는 물도 못 마시고 줄행랑을 쳤다.

 

나는 처음에는 그저 이 거대한 풍경을 복사하기 바빴다. 하지만 천천히 갈라진 땅을 거닐며, 뒷전을 윙윙거리며 때리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느끼기 시작했다. 왜 땅이 이리도 참혹하게 변했는지. 그리고 의심했다. 인간에게 굴종을 강요받던 땅이 과연 무슨 일을 꾸미는 것인지? 그리고 들리기 시작했다. 울음이었다. 아니 비명에 가까웠다. 나의 사진은 한없이 무력하여 그저 헉헉 거리며 그 비명의 땅을 간신히 기록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비현실적인 이 모습은 땅의 풍경을 담는 내게 새로운 시각을 원한다. 무엇이 이 땅의 풍경인가? 한국관광공사가 그리도 아름답다며 사진 찍으러 가라 등 떠미는 풍경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누구도 눈길 한번 주지 않아 사라져가는 반() 풍경의 땅으로 갈 것인지? 물론 판단의 문제이다. 나는 그저 카메라를 메고 땅으로 가라 등을 떠미는 바람의 몸부림에 힘겹다.

 

사진캡션

고라니. 경북 안동 안동댐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