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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천 남구만 문학상 제정을 축하하며

<용인논단> 김윤배 시인

 

 

요즘 지방자치단체의 제 고장 기리기의 각가지 이벤트가 줄을 잇는다. 축제의 형식이던 기념관의 형식이던 문학상의 형식이던 그 고장의 정신을 기리고 널리 알려 지역 주민의 긍지를 드높이는 일이어서 고무적이다.

 

특히 그 고장출신의 작가를 기리는 문학관의 건립과 문학상의 제정은 그 작가의 정신 유산을 널리 공유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문학상의 경우 통영, 하동, 원주가 공동으로 제정한 박경리 문학상, 안동의 이육사 문학상, 경주의 동리.목월 문학상, 진해의 김달진 문학상, 가까운 이웃 화성의 노작 홍사용 문학상 등 많은 문학상을 지자체에서 주관하거나 후원하여 운영하고 있다. 문학관 또한 여러 지자체에서 건립 운영하고 있는바 원주의 토지(박경리)문학관, 양평의 황순원 문학관, 평창의 이효석 문학관, 안동의 이육사 문학관, 진해의 김달진 문학관, 화성의 노작 문학관, 담양의 가사문학관 등이 대표적인 문학관이다.

 

돌이켜 보면 용인은 인구 100만의 거대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문화예술은 불모지나 다름 없다고 말 할 수 있을 만큼 그 활동이나 지자체의 육성지원이 미미했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문학은 발족 20년에 이른 용인문학회가 그 명맥을 이어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용인문학회는 일찍이 약천 남구만(1629-1711)의 문학정신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매년 약천문학제를 개최해 왔다.

 

이번에 용인문학회에서 의령남씨 종중의 후원으로 약천 남구만 문학상을 제정한다고 들린다. 온 시민이 축하할 일이다. 약천의 문학정신을 계승하고 그의 정신적인 유산을 널리 펼칠 뿐만 아니라 한국문학의 질적인 발전을 견인하고자 하는 높은 뜻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약천 남구만은 명실상부한 용인의 정신적 지주이다.

 

약천 남구만은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소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느니라는 시조로 널리 알려진 문인이며 정치가로 시조는 이 작품 한 편만이 청구영언에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오언절구나 칠언절구 등 900여 편의 시와 26편의 기문, 90여편의 묘지명, 18편의 잡서, 17편의 제문 등을 남긴 빼어난 문장가다. 그는 효종, 현종, 속종조의 정치에 깊숙이 참여한 탁월한 경륜의 정치가로 숙중조에는 영의정에 올라 정계의 중심인물로 부상한 소론의 영수였으며 조선왕조실록에 1000여 회 거론된 인물이기도 하다.

 

약천 남구만이 용인과 인연을 맺은 것은 1690년 경이 아닌가 한다. 정계에서 은퇴한 그는 지금의 모현면 갈담리 파담마을로 낙향해 21년을 살다 8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살던 사저가 지금의 남구만 사당인 별묘로 남아 있고 비파담 아름다운 물결을 건너다 보던 정자가 우산정사로 별묘 건너편에 복원되어 있다. 당대에 그가 즐겨 찾던 함벽루와 청은재, 그리고 관란헌은 소멸되어 자취를 찾을 길 없지만 남구만 문학상 제정을 계기로 지자체에 의해 복원작업이 이루어지고 남구만 문학관이 건립되기를 기대해 본다.

 

다산 정약용(1761~1836)은 파당의 폐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론의 영수로 지목되었던 약천 남구만을 일러, 정사를 다스림에 있어 당파에 치우치지 않고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여 나라의 명맥을 보호했고 무서운 말이나 격론을 한 적이 없으며 끝내 청렴과 절개로서 생애를 마친 '불세출의 위인'이라고 평했을 만큼 존경받던 인물이다.

 

약천 남구만 문학상의 제정을 계기로 그의 우국 애민 정신을 바탕으로한 문학정신이 용인시민의 정신적 본향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