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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규 시인의 시로쓰는편지ㅣ모서리ㅣ박성현

이은규 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모서리


박성현

 

저녁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정류장에 앉아 나는 두 가지 이미지를 상상한다 하나는 당신의 젖가슴 아래 붉은 반점이고 다른 하나는 맥도날드가 새로 만든 시그니처 버거의 기묘한 복고풍이다

 

유리문 앞에서 풍선을 든 남자아이가 엄마 품을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쓴다

*

 

모서리 저편에서 물고기들이 파닥거렸다

 

*

 

모서리는 희거나 검고 가볍거나 단단하다 혀를 깊숙이 밀어 넣을 때마다 목구멍에서 흰 사각형이 쏟아졌다 271번 버스가 연남동을 지나 홍대로 꺾어지고 합정역에서는 열한 명의 사람들이 내렸다 당신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

 

우산을 펼치자

숨어 있던 햇볕이 후드득 떨어졌다

 

대리석 무늬처럼 행간이 깊게 패였다

 

우리의 비극은

어미를 잃은 새들이 함부로 버려진다는 것이다

 

*

 

가끔, 죽은 새들이 무릎을 접어 모서리를 꺼낸다

 

석면가루가 휘날리는 비탈에는 벚나무가 발가벗고 있다 트럭이 간신히 올라왔을 때 골목은 야구공처럼 구겨졌다

 

*

 

움켜쥔 조개는 단단한 껍데기를 벌리고 서둘러 굵은 모래를 토해냈다

 

오로지 잊어버리기 위해서 빈 악보는 격렬하게 운다

 

*

 

당신을 둘러싼 빛의 폭우……

내가 당신을 처음 본 골목 저편에서 모서리가 부서졌다

 

천천히, 반복해서 부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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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현 시인의모서리 저녁이 펼쳐져 있습니다. 이 저녁 두 가지 이미지를 상상하는 시적 주체가 자리하지요. 당신의 붉은 반점시그니처 버거의 복고풍은 무엇으로 연결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오로지 잊어버리기 위해서 빈 악보격렬하게우는 것처럼, 어쩌면 우리는 누군가와 연결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지도 모릅니다. 상황이 그러할 때 우리는 내가 당신을 처음 본 골목 저편에서 모서리가 부서지는 현기증의 순간을 대면하게 되겠지요. 마치 약속처럼 법칙처럼 그것은 천천히, 반복해서 부서졌다그리고 부서질 것입니다. 이를 통해 살펴보면 누군가와 연결되지 않기 위한 안간힘은, 강력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 흩어지는 빛과 같이 산발하는 시적 몽타주들이 내적 필연성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일종의 폐부를 찌르는 각, 모서리에 사라지지 않은 빛의 잔영들이 고여 있는 풍경.

 

이은규 시인 yudite2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