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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못해 비관하는 청소년에 한마디

너희가 있어줘 너무 고마워 '존재급여' 무한



언니, 내가 질문하나 할 테니까 잘 생각해보고 대답해봐


오랜만에 만난 친한 후배가 대뜸 질문 하나를 던졌다.


언니가 만약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어서 누워서 살아가야한다면 매달 얼마 정도의 돈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해?”

 

엉뚱한 질문을 듣고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어떻게 돈을 받아, 가만히 누워있는데


심지어 나는 내가 돈을 들여서 간병인을 고용해야하는거 아니냐고 했다. 그러자 그 후배는 자신도 그렇게 대답했다면서 그런데 그때 자신이 받아야하는 것이 존재급여라고 했다. ‘존재 급여는 노동으로 벌어들이는 돈이 아니라 순수하게 내 존재에 부여되는 급여라고 한다. 존재급여가 많으면 있는 그대로 나 자신의 가치를 높이 평가한다는 뜻이지만 없거나 낮으면 자신에게서 노동만이 가치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다. , 자신이 아무 일도 하지 않을 때는 존재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 마음이 여유롭고 풍성할 수가 없다. 늘 쫓기고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노동만이 가치를 생산한다고 여기기 때문에 나 자신을 쉬게 두지 않고 쉬고 있는 동안 불안하고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것이다.

 

후배의 얘기를 듣고 보니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어쩌다 예상치 못한 여유 시간이 생기면 늘 안절부절 하지 못했던 것 같. 긴 연휴가 생겨도 집안일이나 직장 일 때문에 하루도 늘어지게 쉬지 못했다. 사실 딱히 무슨 일을 하지도 않으면서 가만히 집에 있는 것 자체가 나에게 늘 어색했던 것 같. 좀 생각을 바꿔야겠다고 또 생각했다. 그 생각이 또 나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주긴 했지만 그래도 좀 고무적인 생각이 아닌가…….

 

얼마 전에 이틀 정도를 사무실에 상주하면서 회사의 홍보 일을 좀 도와달라고 부탁받은 적이 있었다. 아는 분의 부탁이었고 회사를 그만두고 시작한 사업인 만큼 잘 되면 좋겠다는 생각에 기꺼이 그러겠다고 했다. 그 분은 작가에게 이런 사소한 부탁을 해서 미안하다고 하면서 많이 고맙게 생각했다. 작가라는 직업을 높이 평가하는 그 분의 말에 좀 우쭐하기도 해서 보수가 얼마이든지간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며 좀 의리(?)있어 보이는 대사를 하며 창업 멤버 대열에 합류했다. 하지만 사업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금방 성과가 보이지 않았다. 홍보를 시작하기도 전에 제품 개발부터 차질이 생겼고 획기적인 기획이라고 생각했던 사업 아이템은 큰 반응이 없었다.

 

처음에 희망적이던 분위기는 점점 침체되었고 나 역시도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매출이 많지 않은 회사에 홍보 기획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은 내 존재도 큰 의미가 없다는 것으로 연결되었다. 먼저 그만 두겠다고 말해야하나 고민하던 중에 후배의 그 질문이 떠올랐다. 그리고 후배와 만나서 상황을 얘기했다. 그 후배는 대표가 아직 아무 말하지 않은 것은 언니의 존재감이 아직은 가성비가 괜찮은 거 아닐까요라고 말했다. 나는 늘 나의 존재 급여를 책정하지 않았던 것 같. 내가 지레짐작하고 상대방을 배려한다고 생각하며 먼저 말을 꺼내야하나 생각했다. 사실 광고 카피는 한 줄이지만 그 한 줄을 생각하기 위해 나는 꽤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그리고 그 동안의 콘티 역시도 순간순간 머리를 쥐어짜며 얻어낸 것이다. 회사의 직원들은 나의 존재를 괜찮게 생각했던 것 같. 다만 늘 내가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낮게 생각했다.

 

노동에 대한 정확한 액수가 주어질 때만 그 노동이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 자체가 주는 존재 급여도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당신의 아내가, 당신의 어머니가 하루라도 가사 노동을 멈춘다면 집안의 질서는 금방 무너질 것이다. 혹시 가정이 직장이 아니라는 생각에 그 노동의 가치를 함부로 말한 적은 없을까, 당신의 아내를 무시하고 당신의 어머니를 홀대한 적은 없었을까, 평생을 일하고 정년퇴직을 하거나 의도치 않게 직장을 잃게 된 당신의 남편이나 당신의 아버지를 마치 이제는 무의미한 존재로 만든 적은 없는지 생각해봐야한다.

 

아주 오랜 시간을 병상에 누워있는 가족을 보살피는 사람을 보면서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다는 말을 쉽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가족에게는 병상에 누워있어도, 불치병을 앓고 있어도, 아무리 치료비가 많이 들어도 살아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사한 일인 것이다. 연세가 많은 부모님들이 가끔 오래 살아서 자녀들을 고생시킨다고 말할 때가 있다. 하지만 부모는 그 자체만으로도 존재 급여가 엄청나게 높은 분들이다. 그냥 오래 사셔야한다.

 

공부를 잘하지 못한다고 스스로를 비관하는 청소년들이 있다. 부모에게 부끄러운 자녀일 뿐이라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정말 스스로의 존재 급여가 얼마인지 전혀 모르는 것이다. 부모들은 혹시 자녀들의 존재 급여를 본인들도 모르는 사이에 학교 성적으로 책정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볼 문제다. 자녀는 부모에게 부모는 자녀에서 서로의 존재 급여가 얼마나 큰 지를 말해야한다. 직장에서도 서로의 존재 급여를 말해주어야 한다. 부하 직원보다 영어를 잘 못한다고 해서 부장의 존재 급여가 결코 낮은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 스스로는 잘 정하지 못하는 존재 급여를 일깨워주며 살아야할 것 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