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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

"처인성 승첩 원동력은 처인부곡민의 결사항전"

김윤후 승장, 위민정신 . 호국불교정신 계승방안 2차 학술토론회




()용인불교전통문화보존회(회장 이종재)가 주최한 김윤후 승장의 위민정신과 호국불교정신 계승방안에 관한 제2차 학술토론회가 지난 20일 오후2시 용인시청 컨벤션홀에서 있었다.


이날 발제를 맡은 경기문화재단 김성환 박사는 ‘1232년 처인성 승첩과 김윤후에 대한 발표를 통해 몽골 적장 살리타이를 사살한 처인부곡이 1235년에 처인현으로 승격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김 박사는 최서 묘지명에 따르면 1260(원종1) 처인현령에 임명됐다. 이것은 처인성 승첩이 있던 1232년과 1260년 사이에 수주(수원)에 속했던 처인부곡이 처인현으로 승격되었음을 의미 한다고 밝혔다. 김 박사는 이와 관련해서 살리타이가 이끄는 몽고군이 처인성에서 궤멸되기 직전인 11, 광주성에서 2개월 남짓 격전 끝에 광주성 공략에 실패한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1232년 가을 광주성에 출보 된 이세화가 이끈 광주민들은 수십겹으로 성을 에워싼 몽고군과 밤낮으로 전투해 그들을 물리쳤다. 그리고 최우는 1235(고종22) 고종 18~191~2차 몽고의 침구를 물리친 광주민에 대한 포상으로 상요와 잡역을 면제하는 조취를 취했다. 이때 이세화는 광주부사에서 예부시랑으로 전임됐는데 이 또한 고종 19년에 있었던 전투에 대한 상공이었다고 했다. 이어 처인부곡의 현 승격은 광주민에 대한 포상 조치가 시행된 1235(고종 22) 5월 함께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한편 세종실록지리지 용인현에서 “1397(태조6) 처인부곡에 비로서 현령관이 파견됐다는 기록을 근거로 고려후기 처인부곡이 현으로 승격한 사실을 불신하거나 일시적인 조치로 파악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세종실록지리지 기록은 고려후기 현령관 파견이 지속적으로 이뤄지지 못하고 불안정하게 운영되다가 조선 건국 직후인 1395(태조4)부터 지방행정체계를 정비하는 과정을 반영한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한편, “대몽항쟁을 바라보는 우리 학계의 기본적인 생각은 민의 역할이라며 처인성 승첩의 중요한 배경에는 처인부곡민의 항전이 있었다는 것이 중론이라고 말했다. 이어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조헌이 합단적을 격퇴한 원충갑과 함께 김윤후를 의병의 사례로 삼았고, 신경준은 서산·사명대사의 거의 연원을 고려승 김윤후에게서 찾고 있다. 또 유득공은 병자호란 때 수원 광교산에서 병마절도사 김준룡의 군관으로 청나라 황제 부마 무훈왕 양고리를 화살로 사살한 박의를 김윤후에 비교하고 있다조선 중기 이후 김윤후는 우리 역사에서 민을 배경으로 한 의병의 선구로 자리하고 있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