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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규 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ㅣ나무와 까치ㅣ이상호

 

나무와 까치


이상호

  

높은 나뭇가지에

세 들어 사는 새

 

세도 안 내고 집짓고 새끼 기르며 살기가 영 민망한지

나갔다 들어올 때마다 까치발로 조심조심 걸어드는 새

 

그 마음을 아는지 나뭇가지도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그걸 쭉 지켜보는 하느님도 말없이

따뜻한 어둠을 펴서 함께 덮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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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사의 도저한 흐름 속에서, 이상호 시인은 서정의 문법을 내면화하고 이를 창조적으로 변용시킨 우리 시대 뛰어난 서정 시인입니다. 그의 여덟 번째 시집 마른 장마(시로여는세상, 2016)에 담긴 시인의 말에서도 우리는 이러한 지향점을 만나볼 수 있지요. “시가 마음에 차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조금씩 길어진다. 마음이 더 넓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시심의 물줄기가 점점 가늘어지는 탓이리라. 두렵다. 발길 드문 산속 조그만 옹달샘 같은 이마저 고갈될까 문득문득 하늘을 바라본다.” 무엇보다 우리의 눈길이 머무는 지점은 시가 마음에 차기를 기다리는 시간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김정남 평론가는 시집 해설오래 삭힌 슬픔으로 빚은 금빛 노래에서 위의 시를 예시로 시인의 진정성에 대해 다음과 정리하고 있지요. “나뭇가지에 세 들어 사는 새는 까치발로 조심조심 걸어 들어가고, 그 마음을 아는 나뭇가지는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며, 그걸 바라보는 하느님도 따뜻한 어둠으로 그들을 덮어주는 모습은 서정적 자아가 자연물을 자신의 의식으로 견인하여 그것을 내적으로 인격화한 장면이다.” 이러한 그의 언급에서도 볼 수 있듯이 시인에게 시는 삶의 표면과 이면을 담아내는 시공간입니다. 이 시공간에 문학의 단지 거기 있음의 현현이 빛나고 있음을 우리 모두 기억해요.

 

이은규 시인 yudite2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