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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군가에게 반가운 사람이고 싶다


나는 누군가에게 반가운 사람이고 싶다



언제 밥 한번 먹자라는 말은 별로 반가운 말이 아니다. 앞으로 밥 한번 먹는 것은 우연히 만나면 먹고 아니면 말고 하는 식의 그냥 하는 말이다. 결국 우연히 만나지 않는다면 서로 밥 먹을 일이 없는 사이라는 말이다. 한번 더 해석하면 언제 한번 만날 기회가 없으면 이렇게 인연이 끝나도 별로 아쉽지 않다는 아주 섭섭한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언제라는 그 말을 별로 믿을 수 없어서 한 친구의 귀국을 핑계로 그동안 연락이 뜸했던 친구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했다. 그렇게 나뭇잎만 굴러가도 웃었던 꿈 많던 소녀들이 아줌마의 모습이 되어 작은 동창회가 만들어졌다. 그 만남을 계기로 우리는 정기적인 모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맛집 탐방을 타이틀로 1년에 두 번 만나기로 했다. 회비는 한 달에 2만원과 1만원 사이에서 각축을 벌이다가 결국 15000원으로 타협점을 찾았다. 그리고 한달에 15000원이라는 돈을 모아서 만남을 가질 때마다 고급스러운 식당을 찾아다니며 호사(?)를 누리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인생의 아이러니가 느껴졌다. 좀 비약적이기는 하지만 학창시절 가장 부유했던 친구가 아이 둘 키우면 돈이 많이 든다고 1만원을 주장했고, 형편이 녹록치 않아 늘 아르바이트로 바빴던 친구는 골드 미스로 아주 여유롭게 2만원을 주장했다. 그래도 우리는 5000을 가지고 아웅다웅하는 우리의 모습이 학창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아서 즐겁기만 했다. 그렇게 시작된 그 모임은 5년째 계속 되고 있다.


어쨌든 그 모임은 우리에게 평소에는 비싸서 먹기 힘든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소확행을 누리게 해주고 있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이른바 소확행소비 트렌드가 요즘 대세다. ‘소확행이라는 용어는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1986년에 발간한 수필집 랑겔 한스 섬의 오후에서 처음 등장했다. 하루키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소확행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겨울밤 부스럭 소리를 내며 이불 속으로 들어오는 고양이의 감촉등이다.


헛웃음이 나올 만큼 소소한 일상이 행복이라는 작가의 생각에 어떤 사람들은 소설이니까 소설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평범한 월급을 저축해서 서울에 집을 사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세상이고, 금수저 자녀들의 부정 채용이 뉴스에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서 행복을 어디에서 찾아야하는지 막연할 때가 있다. 정직하게 사는 것이 오히려 자괴감을 느끼게 하는 시대 속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버텨야하는 것일까. 그래서 사람들은 소확행을 선택하나보다. ‘소확행은 몇 년 전 일본의 사회학자 후루이치 노리토시가 한국에 출간한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을 통해서도 한국에 상륙한 바 있다. 그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일본 젊은이들이 사회라는 커다란 세계에서는 불만을 느끼지만 자신들이 머물고 있는 작은 세계에 대해서는 만족한다라고 설명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 소확행이 소비 트렌드로 떠오른 이유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찾을 수 있는 소확행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동네 카페에서 먹은 카페라떼가 맛있을 때, 가끔 혼자서 조조영화를 보는 여유를 즐길 때, 딸이 생일 편지로 나를 감동 시킬 때 등등 찾아보니 쉽게 떠오르는 작은 행복 몇 가지가 있었다. 어떤 사람은 재래시장을 구경하며 호떡을 사먹을 때, 어떤 사람은 따뜻한 온돌방에 누워 스르르 잠들 때라고 한다.


우리는 행복을 경제적인 만족과 연결시킬 때가 많다. 재벌이 결코 행복하지 않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불행한 최후를 보면서도 돈과 명예를 쫒는다. 그러다가 정말 소중한 소확행을 놓치는 것이다. 직장에서 동기들 보다 빠른 승진도 좋지만 그 사이에 사랑스런 자녀가 크는 모습을 놓쳐 버린다면, 먼 훗날 여유있는 여행을 꿈꾸며 쉬지 않고 일하다가 건강을 잃어버린다면 그게 얼마나 속상한 일인지 생각해본다. 내가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행복은 생각보다 많다. 내가 누군가에게 받았던 작은 행복의 느낌을 그대로 누군가에게 하면 된다생일날 우연히 받았던 카페라테 쿠폰은 정말 행복했다. 너무나 뜻밖에 사람으로부터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평소에 친해지고 싶었거나 눈빛으로만 인사하던 사람에게 따뜻한 커피 쿠폰을 선물로 보내기 시작했다. 상대는 내가 투자한 비용보다 훨씬 더 큰 감동으로 내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다. 그래서 갑자기 생각이 나는 사람이 있을 때는 그렇게 쑥스럽거나 표현하기 어색한 마음을 말보다는 문자로 보내곤 했다.


어떤 목적을 가지지 않고 만남만으로도 행복한 사람을 가지는 것은 쉽지가 않다. 그래서 먼저 내가 상대에게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우연히 길에서 만났을 때 부담스러운 사람보다는 정말 무의식적으로 웃음이 나는 반가운 사람이 되고 싶다. 같은 모임에서 몇 년을 봤지만 서로 말 한마디 못하고 지내던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을 우연히 백화점에서 만났는데 서로가 너무 반가워했다. 그러면서 문득 우리가 이렇게 친했나하면서도 반가웠다. 그 사람은 지하 코너를 가더니 정말 맛있기로 소문난 카페라떼 한잔을 내게 사주고 떠났다. 이상한 건 그 다음 모임에서도 서로 눈빛만 교환할 뿐 서로 얘기를 나누지 않았다.


낯선 곳에서 의외의 사람을 만났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을 보고 어떤 표정을 지을까.


나는 그렇게 누군가에게 반가운 사람이고 싶다. 세상에서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도 어떤 한 사람에게라도 좋은 사람이라면 그 또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아닐까 싶다. 그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함께 한다면 충분하다. 나의 소박한 행복은 이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