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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룡의 역사기행문


삶의 속도를 늦추고 바라보는 부여, 부여는 백제다

부소산엔 진하고 굵은 초록비가 내렸다


풍경은 바람처럼 흩어졌다. 오래된 백제의 시간은 서울을 찍고 공주를 거쳐 부여에서 부서졌다. 산산히 깨진 백제의 왕궁을 복원하며 6좌평의 관청길을 걸어야 할 몫은 온전히 답사객의 몫이다.


얌전하고 고즈넉한 부여의 답사 안내판에 그려진 볼거리는 지나치게 친절하다. 부여가 주는 쓸쓸함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싱그러운 봄볕의 화창한 기운을 받으며 떠나는 것이 좋다.


사비성을 감싸안은 허물어진 나성은 붉은 속살을 공개했다. 백제의 멸망을 지켜 보며 무너진 능산리의 절터에, 천진스런 7기의 고분군 위로 속삭이듯 봄비가 내렸다. 서쪽 산등성이는 8km로 추정되는 나성의 잔편이 완연히 남아있다.


그 아래 에 흔적만 남은 왕실의 원찰(願刹)에서 1400여 년 간 잠들어 있었던 금동대향로는, 나당연합군에게 도성이 함락된 시간을 뚫고 황홀한 자태로 남아있다. 목숨을 보전할 수 없었을 긴박했던 승려들이 다급하게 숨겨놓은 향로는 낙토(樂土)의 세상을 기원한 백제인들의 정성을 받아 연꽃처럼 피어난 것이리라.


이른 봄날 뿌리는 백마강은 달빛이 없어도 청승 맞았다. “···그때에 포위를 당하여 너무 급하게 되자 임금과 신하가 궁녀들을 버리고 달아났다. 궁녀들은 의리로 군사에게 몸을 더럽힐 수 없다 하며 떼를 지어 이 바위에 이르러 물에 떨어져 죽었다.” 고려의 이곡이 지은 백마강 유람기인 <주행기>에 나오는 타사암은 시간을 흘러와 전설의 시간으로 쌓여져 낙화암이라 불리운다.


과거의 역사와 현실의 역사를 들먹이며 부여와 백제를, 망국의 의자왕을 조롱하는 허구의 삼천궁녀를 위로하지 않으련다.  부자유스러운 과거의 역사로 현재의비뚤어진 전설의 역사에게 나는 다시 묻는다.

살아서 아름다운 것이 있었던가?’ 살아서 눈부셨던사라져 비극적인 백제의 역사를 위로하기 위해 국립 부여 박물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깨진 기와와 질그릇과 비파형과 간석기를 보며 생각한다. 부드러운 질감과 우아한 곡선의 항아리들은 풍요와 여유로운 마음을 간직했던 백제인의 손맛을 느끼게 해준다. 산수무늬 벽돌에 나타난 산봉우리의 에로티시즘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


대당평백제국비명(大唐平百濟國碑銘)’ “밖으로는 곧은 신하를 버리고 안으로는 요부를 믿어 형벌이 미치는 것은 오직 충량에게 있으며 총애와 신임이 더해 지는 것은 반드시 아첨꾼이었다.”는 소정방의 오만함은 분하다. 하지만 정림사터 5층 석탑은 날아갈  경쾌했다. 완만한 체감률과 훤칠한 1층의 탑신부는, 요즘의 대세 아이돌 가수의 늘씬함을 닮았다.


뒤엉킨 역사의 불구덩이에서 홀로 살아남은 석탑앞에서 온전하게 빌었다. 역사적 기억이 오롯하기에 더욱 아름다운 탑은,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은 상징적인 백제미의 명작이다.


부여는 조용한 동네다. 어디선가 본 듯한 낯익은 동네다. 봄 바람을 맞으며 대문이 활짝 열려있는 아담한 옛집을 들여다 봤다.  



껍데기는 가라/사월도 알맹이만 남고/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아사달 아사녀가/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한라에서 백두까지/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고 외치는 시인 신동엽. 애련한 얼굴, 오래전에 헤어진 동네 형님같은 친근한, 앳띤 얼굴, 시인의 생가 마루에 앉아 오래도록 먹먹했다.


치열한 현실을 뚫고 나가 역사의 맨 앞자리에 나서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아픔을 넘어 희망을 말하고자 한 시인의 마을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본다는 당위적 행위와 만진다는 실체적 행동을 마음껏 하지못한 부여행 고적답사였다. 삶의 속도를 늦추고 바라보고 싶은 날, 다시 돈오(頓悟)하고 점수(漸修)하고 싶은 날에 다시 부여에 오련다.

오룡(오룡 인문학 연구소 소장, 적폐역사 개념역사저자)


 

능산리 고분군은 어머니의 품속같은 포근함을 마음껏 안겨준다


금동대향료의 백제 조형미술의 긍지와 자부심의 발현이다


풍성한 인심, 여유로운 넉넉함을 마음껏 보여주는 항아리들이 정겹다


부여는 참 조용하다. 신동엽 시인의 방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