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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진의 BOOK소리 126

최은진의 BOOK소리 126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유엔 내부의 이야기

유엔을 말하다

저자 : 장 지글러 / 출판사 : 갈라파고스 / 정가 : 16,800

 

 

몰락하기 직전인 유엔이 재기할 수 있도록 나는 이 책으로 사람들에게 선의라는 무기를 제공하려 한다며 이 책의 목적을 확고하게 밝히고 있는 장 지글러.


<세계의 절반은 왜 굶주리는가>라는 책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그가 유엔에서 일어나는 보이지 않는 폭력과 거대한 힘에 대한 얘기를 한다. 유엔 식량특별조사관, 유엔인권이사회 자문위원회 부의장 등을 맡으며 평생을 유엔에 몸 담아온 그가 들려주는 유엔의 모습은 참담하다. 유엔을 좀 먹는 힘의 논리를 이야기하며 우리가 알지 못했던 유엔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유엔에선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최초의 설립 취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유엔의 민낯은 이렇다. 자금 지원을 많이 한다는 이유로 유엔 조직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강대국들, 약소국으로부터 돈을 삥 뜯는 벌처펀드 세력, 가스실에서 최후를 맞이한 유대인들이 맡겨 놓은 자금을 그 후손들에게 돌려주지 않으려는 스위스 은행,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러시아의 거부권 때문에 시리아 내전에 개입 못하는 현실. 유엔이 추구하는 보편적 정의의 실현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우리가 배운 유엔은 인권을 중요시하고 세계평화를 지향하며 인류의 보편적 정의를 추구한다는, 아름다운 기관이었다. 하지만 내부자의 생생한 눈은 이렇게 고발한다. 이해관계가 존재하는 한 권력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오늘날의 세계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그가 인용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도스도예프스키가 했던 말은 엄중한 메시지를 준다. ‘모든 사람들은 각자 자신 앞에서 벌어지는 일에 책임이 있다이 말은 세상의 모든 일에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 있다는 것. 유엔 사무총장을 맡아 주목을 받았던 전 반기문 총장을 생명력없는 엑스트라같은 사람으로 묘사되는 부분에선 얼굴이 붉어진다면 책임감이 남아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장 지글러가 유엔에 대해 마지막 희망을 놓지 않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분명 희망이 있을 것이다. 각자 자신 앞에 벌어지는 일에 책임지려는 자세를 가진다면 말이다.

<용인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