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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배시인의 감동이 있는 시

국수집 연가ㅣ김종경


국수집 연가

                        김종경


허기진 수화를 주고받던 젊은 남녀가 잔치 국수 한 그릇 주문하더니 안도의 눈빛 건네고 있다

 

하루 종일 낯선 시선을 밀쳐내느라 거칠어진 손의 문장들은 국수 가락처럼 풀어져 때늦은 안부에도 목이 메어오고

 

후루룩 후루룩 국숫발을 따라 온몸으로 울려퍼지던 저 유쾌한 목소리들

세상 밖 유배된 소리들이 국수집 가득 부글부글 끓어오를 때면 연탄난로 위에 모인 이국의 모국어들도 어느새 오랗게 익어갈 것이다

 

혹여, 누구라도 이 집이 궁금해 찾아가려거든 낮달 같은 뒷골목 가로등 몇 개쯤 무사히 통과해야 하고 또다시 막다른 슬레이트 집 들창문을 엿보던 접시꽃 무리지어 손 흔들 것이니

누군가의 발자국보다 개 짖는 소리가 먼저 도착해 온 동네를 흔들어 깨울 때 푸른 문장들을 뽑아 내는, 오래된 연인의 단골 국수집.

 

김종경의 시세계는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상과 멀리 있지 않다. 그의 시편이 감동적으로 읽히는 이유다. 언론인이며 사진작가고 용인 문화의 파숫꾼이기도 한 그는 20여 년 전에 동인용인문학회를 창립하고 이끌어 왔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용인지역에 머물지 않는다. 첫시집 기우뚱, 날다에서 우리들을 아프게 하는 수많은 질문은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그늘과 편견과 불평등과 이주노동자에 대한 연민의 시각을 깊이 있게 드러낸다.

국수집 연가의 공간은 낮달 같은 가로등을 몇 개씩이나 지나야 되는 뒷골목의 막다른 슬레이트 집이다. 공간만으로 보면 80년대적이지만 이 서러운 공간은 오늘의 궁핍한 사회현실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그 누추한 국수집에 농아 장애우인 젊고 가난한 연인이 잔치 국수 한 그릇을 시켜놓고, 이제는 허기를 면하게 되었다는 안도의 눈빛을 나누고 있는 것이다. 잔치국수 한 그릇이 위안인 것은 수화로 서로에게 애틋한 마음을 전하는 두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정상인들의 피곤했던 시선을 떨칠 수 있어서일 것이다.

국수집은 연탄난로를 사용하는 집이어서 연인들에게는 들리지 않는 소리들이 국숫물처럼 부글부글 끓어 오른다. 같은 공간에서는 이주노동의 고단함을 달래고 있는 피부색이 다른 노동자들의 모국어가 왁자 할 것이다. 그들은 모국에 대한 그리움을 슬레이트 국수집에 와서 국숫발과 막걸리로 달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러한 풍경에 어울리게 늙은 주모는 따사로운 미소로 누구에게나 훈훈한 가슴이었을 것이다.

마지막 연에 배치한 접시꽃은 슬레이트 집 창을 엿보며 청춘들의 젊음 꿈을 속속들이 읽고 있는 주모거나 그들 자신일 것이다. 서럽도록 아름다운 풍경으로 읽히는국수집은 살아 있음의 환희와 끈질긴 생명력의 둔중한 무늬를 보여주는 생명 예찬의 공간이며 긍정적인 세계관이 돋보이는 작품이다.김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