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8 (목)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김윤배시인의 감동이 있는 시

너의 화엄ㅣ박 철


너의 화엄

 

박 철

 

화엄을 읽었다

 

한 시절 매달린 경()의 끝이

잊으라, 였을 때

억울해 너에게 편지를 쓴다

 

삼년간 벗이었던 화정공원의 물푸레나무

그마저 옹두리 만들며 스스로 물러서니

구청 직원은 곧 베어버리겠다 말한다 또

잊으라는 것이다

산 위에 오르면 장엄하던 눈 아래 세계도

골목길에 들어서 쉽게 잊혀지고

그게 모두 내 허물인 듯

내일은 일없이 이종사촌이나 찾아가봐야겠다

 

사랑도 나무도 읽지 말고 담아야 할 것을

한 시절 바라보며

화엄을 잃었다

 

 

 

박철이 잃은 것이 정말 화엄인가? 화엄은 범어로 간다뷰하로 잡화, 즉 여러 가지 꽃을 말하는데 장엄함을 이른다. 여기서 잡화는 불타와 보살이 많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말이다. 그러나 박철이 읽은 것은 화엄경이다. 화엄경은 부처님의 깨달음을 보살들의 입장에서 설명한 경전이다. 경전의 가르침을 박철은 잊으라는 명제로 새긴 것이다.

삼년간 벗이었던 화정공원의 죽어가는 물푸레나무도 잊으라는 것이며, 산 위에 오르면 눈 아래 보이던 장엄한 세계도 잊으라는 것이다. 잊는다는 것은 기억에서 지운다는 것이며 존재의 의미를 삭제하는 것이다. 박철은 어떤 존재던 존재의 의미를 삭제 할 수 없는 시인이어서 잊어야 한다는 것이 자신의 허물인 듯 괴로운 것이다.

세상에는 잊을 수 없어서 잊지 못하는 게 있고, 잊어서는 안 되기에 잊지 못하는 게 있다. 전자가 지극히 개인적인 사건이라면 후자는 역사적인 사건이다. 잊을 수 없는 개인적인 사건은 사랑을 읽거나 나무를 읽는 일이며 잊어서 안 되는 역사적 사건은 촛불을 읽는 일이며 자유를 읽는 일이다. 이것들을 잊으라하면 억울하고 원통한게 시인이다. 박철이 잃은 화엄은 개인적인 것과 역사적인 것 모두를 말한다. 김윤배/시인

<용인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