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이 그렇다
오봉옥
1
내가 구름을 걷고 싶은 건
순전히 고 기집애 때문이었다 온종일 졸래졸래 따라다니던 열 세 살 고 기집애
우린 구름 속에 집을 지어놓고 꿈꾸듯 흘러 다녔다 난 서울로 가자했고, 고 기집애는 무인도로 가자했다
(.......)
3
새우처럼 구부리고 자는
늙은 아내의 맨발이 섧다 무슨 가슴 앓이를 하고 살았기에 밭고랑처럼 발바닥이 쩌억 쩍 갈라진 것이냐
구멍 난 팬티를 아무렇지도 않게 입고 다니는 여자
늘어지 뱃살을 애써 감추며 배시시 웃는 여자
살갖 좀 늘어진들 어떠랴 엄니 가슴팍처럼 쪼그라들고 늘어진 거기에 꽃무늬 벽지 같은 문신 하나 새기고 싶다
나와 눈이 마주치지 않았더라면 더 높이 날아올랐을 텐데 들판을 통통 튀어 오르는 가젤의 발거름 처럼 가볍고 신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을 텐데
가여운 그 여자 팔베개를 해주려 하니 고단한 숨을 몰아쉬면서도 내 팔 저릴까 가만히 밀어내고 있다
오복옥에게 여자는 구름을 걷게 하고 꽃무늬벽지같은 문신 하나 늘어진 젖가슴에 새기고 싶게 만든다. 열세 살의 고 기집애가, 생략되었지만 스물아홉 숨어지낼 때 그와 몰래 만나던 처녀였고 지금의 맨발이 섧은 늙은 아내다. 한 사내의 사랑이 이처럼 지순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는 5.18의 역사적인 현장을 지켰던 시인이다. 오봉옥은 시집『붉은 산 검은 피』에서 역사와 민중의 이야기를 사실적이고 강렬한 언어로 노래했다.국가보안법위반혐의로 체포구금된 것도 『붉은 산 검은 피』 때문이었다.
인간의 비극적인 삶은 그에게 영원한 시적 상황이고 현장이어서 어느 시편을 읽어도 긴장감이 독자를 사로 잡는다. 「내 사랑이 그렇다」는 가족사여서 따뜻하다. 김윤배/시인<용인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