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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100년전 용인은 만세함성에 들썩였다

3월28,29일 절정... 4월3일까지 계속돼





100년전 1919년 용인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3·1운동을 전개했다. 321일 원삼면 좌항리에서 황경준· 최상근· 안명옥· 김은수· 이은표· 이인하를 비롯한 주민들이 일어나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면사무소로 향했다.원삼면 사암리· 맹리의 주민들도 뒤를 이었다. 323일에도 성산리와 갈천리의 주민들이 시위를 벌였다. 324일에는 김량장보통학교 학생들이 졸업식을 마친 후 시위운동을 전개했고, 주민들도 가세했다.


용인의 3·1운동은 328일과 29일에 절정을 이뤘다. 수여면 김량장리 용인군청 앞에 1000여명이 모여 시위를 벌였고, 모현면의 초부리, 포곡면의 삼계리· 둔전리· 유방리· 금어리, 내사면(양지면)의 대대리, 수지면의 고기리· 동천리· 풍덕천리, 읍삼면의 마북리 등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시위운동을 전개했다.


용인의 시위운동은 43일까지 계속됐다.


기흥면의 하갈리· 공세리, 내사면의 남곡리, 읍삼면의 죽전리, 수지면의 상현리, 외사면(백암면)의 백암리, 원삼면· 남사면 등의 주민들이 연이어 일어나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용인의 3·1운동은 광범위하고 격렬했다. 원삼면· 이동면· 모현면· 내사면· 수지면· 읍삼면· 기흥면· 외사면· 남사면· 수여면 등 용인 전 지역에서, 주민· 학생· 스님· 기독교인· 천도교인 등 모두가 나서서 시위운동을 일으켰다. 참가한 인원은 13200여명에 달했다.


시위운동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데 그치지 않았다. 면사무소· 헌병주재소를 습격하는 등 격렬하게 시위운동을 전개했다. 이 과정에서 안종각· 최우돌· 성락중을 비롯해 35명이 사망했고, 실종자 139, 부상자 502, 투옥자 65명 등, 직접 피해를 당한 사람이 모두 741명에 달했다.

(용인 3.1운동 100주년기념 홈페이지)<용인신문 - 박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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