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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 특집

이우현이 가다!
중앙아시아 항일운동가와
카레예츠를 찾아서


강제이주 82년… 세월만큼 깊어진 고국사랑

 

용인신문은 ‘3.1운동 ·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아 항일운동가인 홍범도 장군이 잠들어있는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와 우즈베키스탄에 생존중인 고려인 1세대들을 취재해 보도하기로 했다이번 기획은 지난 21일부터 29일까지 중앙아시아 전문가이자 더불어민주당 내 ‘3·1운동 ·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특위’ 집행위원을 맡은 이우현(용인병지역위원장과 공동으로 추진한 동행 취재 연재물이다.어려운 여건과 촉박한 일정에도 동행 취재에 적극 협조해준 이 위원장과 현지 안내와 통역을 맡아준 키르기스스탄의 졸도쉬와 마흐무트그리고 우즈벡키스탄 국립체대 백문종 교수타슈켄트 세종학당 허선행 학당장타슈켄트 아리랑 요양원 김나영 원장민족지도자 황만금 선생의 둘째아들 황스타니슬라브씨 등 수많은 고려인들과 교민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편집자 주>

 

카자흐스탄의 홍범도 장군묘역을 찾아

아리랑 요양원고려인 1세대를 만나다

고려인 민족지도자 황만금폴리따제

고려인 노동영웅 북극성지도자 김병화

 

음력11일 설날인 지난 25. ‘3·1운동 ·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특위더불어민주당 이우현 집행위원과 기자는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설날 아침을 맞이했다. 일행은 전날 밤늦게 카자흐스탄 국경을 넘어와 매우 피곤했다. 숙소는 오래된, 하지만 한국 교민이 도심에서 운영 중인 작고 깔끔한 게스트하우스였다. 농담 삼아 설날이니 떡국은 먹을 수 있겠지요? 했더니, 이 위원장이 준비돼 있다고 말한다. 기대에 부풀어 막상 한인 식당에 갔을 땐 떡국 대신 일반 한식이었다. 적잖게 실망했지만, 이국의 땅에서 설날 아침에 한식이 어디냐며 위안을 삼았다.



설명절인지라 모든 일정을 뒤로한 채 고려인(카레예츠) 1세대 어르신들의 거주 시설인 아리랑 요양원을 방문하기로 했다. 안내를 자처한 우즈벡 국립체대 백문종 교수와 허선행 세종학당장이 일찌감치 게스트하우스를 찾아왔다. 설날 아침이라 그런지 모두 기분이 싱숭생숭한 모양이다. 허 학당장은 설날 고향에 못간지 27년째였고, 백 교수는 11년째란다. 이 위원과 기자는 설날, 집 떠나 나온 건 처음이니 할 말이 없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국내 정치이야기가 나왔다. 해외에 나가면 다 애국자가 된다더니 모두들 나라 걱정이다. 우즈베키스탄은 카리모프이후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엄청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타슈켄트를 서너 번 이상 방문한바 있는 기자 역시 매번 갈 때마다 뒤바뀌는 도심 분위기에 격세지감이 느껴졌다. 타슈켄트를 수십 번 방문한 이 위원장 역시 유럽의 도시를 보는듯하다고 감탄했다.


#머나먼 여정 중앙아시아 고려인 흔적을 찾아

고려인 1세대는 구 소련시절 스탈린의 소수민족 분산정책에 따라 강제이주 된 우리 동포들이다. 솔직히 설날, 고려인 1세대 어르신들에게 큰절을 올릴 것이라곤 생각지도 못했었다. 무엇보다 이 머나먼 땅에 동포 어르신들의 요양시설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으니 죄송할 따름이었다. 중앙아시아, 특히 우즈베키스탄에 해박하다는 이우현 위원도 고려인 요양원 방문은 처음이었다. 다행히 ‘3·1운동 ·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특위집행위원 자격으로 뜻 깊은 방문을 하게 됐으니 앞으로의 책임감 때문에 어깨가 더욱 무거워질 것이다. 그는 지금도 매년 타슈켄트 세종학당 명예교장 자격으로 운동회를 비롯해 각종 후원을 하고 있다.


설날 요양원 방문은 이우현 위원장과 통역 겸 가이드인 Mr.졸도쉬의 무리(?)한 강행군 덕분이었다. 우리 일행은 현지 3개국을 모두 SUV차량으로 다녔다. 이곳은 다행히 국경을 우리 차량으로 넘을 수 있었다. 1991년 구 소련 해체 후 독립한 15개국 중 11개국이 CIS(독립국가연합가입국이 됐고, 이번에 우리가 방문한 3개국 모두 CIS소속으로 국경 왕래는 비교적 자유로웠다. 그럼에도 거리, 시간 등 불확실한 일정 때문에 숙소도 예약하지 않은 채 현지에 도착해서 잡았고, 식사 또한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빵으로 해결하기 일쑤였다. 키르기즈스탄을 경유할 때는 협곡과 설산을, 세계 9위의 면적을 자랑하는 카자하스탄은 하루 종일 텐샨산맥의 설산과 끝없는 평야지대를 달려야만 했다. 도시 간 이동거리가 수백 km이다 보니 식사를 제때 하긴 쉽지 않았다.


첫날, 둘째 날은 그저 모든 자연풍광이 놀랍고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그런데 막상 카자하스탄 크질오르다에 있는 홍범도 장군 묘역을 찾아가기까지는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거리감보다는 대한민국 항일운동가의 묘역이 왜 중앙아시아에 있는지, 역사의 아이러니로 씁쓸해진 마음 때문이었다.


크질오르다를 다녀오는 내내 이우현 위원장은 소수민족 분산정책을 빌미로 이역만리(異域萬里) 황무지에 우리 동포들을 강제 이주시킨 스탈린이야말로 히틀러와 다를게 뭐냐며 비판했다. 그는 또 식민지 시대에 나라 잃고, 고국을 떠나 박해 받던 불쌍한 우리 동포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고려인 1세대 어르신들 거주 아리랑 요양원

중앙아시아 곳곳엔 고려인 동포 1세대들이 생존해 있다. 이젠 또 하나의 민족인 고려인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 동포임에 틀림없다. 1세대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 부모님 손에 이끌려 이주해 왔다. 엄밀히 말해 1.5세대인 셈이다.


2019년은 고려인 강제이주 82주년이다. 연해주 등지에서 중앙아시아로 이주한 후 벌써 4~5세대에 이르렀다. 1세대 어르신들의 기억엔 과연 고국(대한민국)이 남아있을까. 우리말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그런데 놀랍게도 1세대 어르신들이 한국말과 한국 노래를 잊지 않고 있음을 확인할수 있었다. 게다가 고국을 그리워하는 어르신들을 보고 있노라니 취재 내내 국가와 민족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됐다. 한편에선 식민지와 분단시대를 관통한 민족의 자괴감이 밀려들었다.





타슈켄트주 유코리치르칙 수랑겐트 아흐마드 야싸비 농장(시온고마을)에 위치한 아리랑 요양원(원장 김나영). 고려인 독거노인 요양원인 이곳은 구 소련 시절 집단농장 내 유치원이 있던 자리다. 2006년 한국과 우즈벡 정부가 합의한 후 2007년 고려인문화협회가 현재의 요양원 부지와 건물을 우즈베키스탄 정부에 무상으로 증여하면서 건립이 추진되기 시작했다. 2008년엔 우리나라 보건복지부에서 국고지원을 통해 재단의 운영 참여를 결정했다. 다음해엔 KOFIH(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 대한민국 대사관, 고려인문화협회가 3자 협약 체결을 맺었다. 우즈벡 정부의 승인을 받아 20103월 개원 후 현재까지 KOFIH 우즈벡 지사가 4차에 걸쳐 위탁운영 중이다.


2017년 재외동포 현황자료에 따르면 외국국적(시민권자)178607명이다. 이를 우즈베키스탄 인구 구성 피라미드에 적용하면 1937년 이전 출생자는 전체 인구의 1%를 구성한다. 따라서 우즈벡 고려인 1937년 이전출생자는 1749, 2세대로는 13645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2018119일 조사에 따르면 요양원이 위치한 시온고마을(아흐마디야싸비)은 전체 마을주민 2502명 중, 고려인이 1308명이다. 다른 지역에 비하면 많은 숫자라고 한다.


2017년 대통령 8.15 광복절 축사에서는 해방 뒤에도 돌아오지 못하는 동포들이 많습니다. 지금도 시베리아와 사할린 등 곳곳에 강제이주와 동원이 남긴 상처가 있습니다. 그 분들과도 동포의 정을 나누겠습니다.”라고 밝힌바 있다. 정부는 현재 국정 과제로 해외체류 국민보호 강화 및 재외동포 지원을 확대중이다.


아리랑 요양원은 1937년 이전 태생으로 강제 이주된 동포 1세대가 입소 대상이다. 이들에겐 요양과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 대신 고려인 독거노인 중 남자 60세와 여자 55세 이상도 입소 자격이 주어진다.


우즈벡 타슈켄트 인근 ‘아리랑 요양원’ 방문

1세대 노인들 한국말·한국 노래 그대로 간직

식민지·분단시대 관통… 한민족의 제3지대

두동강 난 한반도 보며 한숨… 통일 소망


현재 이곳엔 최고령자 강안나(96), 김귀둥야(96) 할머니 외 39명이 거주하고 있다. 평균 연령은 86.13세다. 정원은 44명이지만 지난해 7명이 돌아가시고, 7명이 새로 들어오시고, 올해 벌써 3명이 돌아가셨다고 했다. 고령자들의 현실을 반증하는 수치다.


김나영 원장에 따르면 아리랑 요양원이 처음 이곳에 생겼을 땐 입소를 꺼리는 어르신들과 가족들이 많았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지만 처음에 부모님을 요양시설에 보낼 땐 도의적 책임과 남의 시선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젠 아무나 못 들어가는 부러워하는 시설이 됐다는 게 김원장의 말이다.


이 요양원은 우즈베키스탄 수도인 타슈켄트시에서 동남쪽으로 30km 떨어져 있다. 대지 면적은 11875(3600)으로 본관 약3360(1018)과 부속 건물 등이 있다. 운영은 재단에서 파견한 원장(사회복지사) 1명과 나머지 23(고려인6, 카자흐스탄인 11, 우즈베키스탄인 6)은 현지에서 채용, 한국의 어느 요양원 못지않은 시설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요양원 2층에서 내려다보이는 담장 밖 집들은 우리나라 전통가옥 구조를 닮았다. 울타리 안에 마당과 텃밭이 있으니 영락없는 옛 한국의 시골 전경이다. 한때 집단농장(콜호즈) 시절엔 우주베키스탄인들도 고려인들을 매우 존경하고 부러워했다. 지금도 거리에서 웬만한 사람들을 만나면 안녕하세요라며, 한국말로 먼저 인사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들은 한국 사람임을 금새 알아채고, 자연스럽게 한국말로 인사한다. 그만큼 오래전부터 근면 성실한 고려인들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반증이리라.

 

#96세 최고령 할머니들 깔끔한 용안에 한국말 노래

요양원에 살고 계시는 강안나(96) 할머니의 방은 작지만 깨끗했다. 할머니는 키르기즈스탄 수도 비쉬켓에서 40년간 살다가 오셨단다. 예쁘게 화장한 할머니는 연세 탓인지 잘 듣지는 못하셨지만 고국에서 왔다는 말에 우리 일행을 반갑게 미소로 맞이했다.


강 할머니와 같은 연배이신 김귀둥야 할머니. 김 할머니는 얼굴과 몸단장을 마친 후 우리 일행을 맞았다. 몇 살이시냐고 묻자 95세란다. 우리나이로 역시 96세다. 김 원장은 김 할머니가 원래 외동딸이라 치장을 잘 하신다고 귀뜸한다. 할머니는 이제 종점에 갈일만 남았다면서 형제들은 다 죽었다고 말한다. 김 할머니의 딸은 한국으로 가서 요양보호사를 하고 있단다.


기자가 한국말 잘 하신다고 하니까, “감사합니다라고 되받아주신다. 이어 좋은 사람들 만나니 여기서 죽어나가도 일 없소……자꾸 무슨 말을 하면 섧소


김 할머니는 김 원장이 거듭 창가를 요청하자 끝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봄이 와서 농사를 지을 때 부르던 노동요였다. 붉은 스웨터와 머리띠를 하신 김 할머니의 노래를 또 다시 들을 수 있을런지.


이어 복도에서 만난 최순금 할머니(89세)는 평양 태생의 부모님에 의해 블라보스톡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최 할머니는 7세에 강제이주되었다며 짧은 인터뷰 중에도 고단한 인생사와 가족사를 털어놨다.식사 시간이 되었다며 돌아서는 최 할머니의 분홍색 치마 저고리에서 봄기운이 완연하게 느껴졌다.  


#“내 조국은 조선이요통일이 되어 빨리 가보고 싶다

예전엔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조국이 어디냐고 물으면 러시아요, 라고 했는데 요즘엔 조선이라고 말씀하세요. 빨리 통일이 되어 남조선과 북조선의 고향에 가보고 싶다고요


김나영 원장이 전한 말이다. 고려인 1세대들에겐 이미 조국이 잊혀 질 만도 하지만, 최근 한류에 힘입어 한국 드라마와 한국소개 다큐멘터리 등을 매우 좋아하신단다. 그래서인지 점점 조국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신다고.


요양원을 둘러본 후 이 위원장은 어르신들에게 간식 봉사를 위해 식당을 찾았다. 먼저 설날을 맞아 큰 절을 올렸다. 너무 늦게 찾아와 죄송하다며 다시 방문할 것을 약속했다. 소정의 성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일일이 어르신들의 손을 붙잡고 인사를 하고, 만수무강을 기원했다. 처음엔 자원봉사자로 왔다가 요양원의 책임자가 됐다는 김 원장은 예전에 한국에서 많은 분들이 방문해 주셨지만, 요즘은 오히려 뜸하다고 말한다. 어쩌면 카레예츠의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대신 전해주는 아쉬움의 표현이리라.


일행은 일정을 마친 후 김 원장과 함께 요양원 밖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그러면서도 왠지 또 다시 와야만 한다는 책임감 때문인지 떠나는 발걸음이 무겁게만 느껴졌다.

<동행취재=용인신문 - 김종경 발행인 iyongin@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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