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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배시인의 감동이 있는 시

말죽거리 주유소에 고독이 찾아온다ㅣ최승호


말죽거리 주유소에 고독이 찾아온다

최 승 호

 

말죽거리 주유소는 말죽거리에 있다

말죽도 말죽통도

말대가리도 없는 말죽거리

 

한밤중 말죽거리 주유소에 고독이 찾아온다

길 잃은 말처럼

눈먼 고독이 찾아오는 것이다

 

말죽거리 주유소엔 대평원의 하늘이 없다

굵은 별들이 서늘하게 내려오는

지평선이 없다

 

창밖을 망국의 눈으로 내다보는

고려인의 후예

알바노인이 있을뿐

 

최승호는 일찍이 대설주의보로 암울한 80년대의 정치적 상황을 백색의 계엄령이라 규정하고 계엄령 속을 날아가는 쬐그만 굴뚝새의 생명력을 보여줌으로써 불후의 시편으로 자리잡게 했다. 그 후로 그는 자본주의의 소비문화를 변기 혹은 똥으로 은유화하며 시대를 앞질러 가는 작품을 선보였다.


그가 방부제가 썩는 나라로 돌아왔다. 내 나라가 얼마나 썩었으면 방부제가 썩는다는 말인가. 섬뜩하고 참혹하다. 하기야 고위 공무원을 임명하기 위한 청문회장은 그들의 삶이 부패의 복마전이었음을 증거하는 자리가 된지 오래다. 그런 세상이니 방부제인들 어떻게 썩지 않고 견디어 내겠는가. 관계뿐 아니라 정계도, 경제계도, 법조계도, 학계도, 문화계도 방부제를 썩게 할 만큼 부패했다. 가히 부패공화국이다. ‘파리의 생각은/오직 부패뿐이다/내 생각도 온통 부패뿐이다라고 자책하는 건 그가 이 사회를 구성하는 개체로써, 당대의 이름 무거운 시인으로써 부패를 추방하기 위한 어떤 행위도 하지 못했다는 반성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시를 통해 끊임없이 이 세상의 부패현상에 대한 경종을 울려 왔다.


말죽거리 주유소에.....는 부패를 직접적으로 노래한 작품은 아니다. 부패한 세상을 망국의 눈으로 내다보는/고려인의 후예/알바노인을 배치함으로써 부패한 세상이 어디로 흘러가게 될지를 큰 그림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말죽도 말죽통도 말대가리도 없는 말죽거리 주유소에는길 잃은 말처럼/눈먼 고독이 찾아온다. 눈먼 고독은 눈멀어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절대 고독이다. 절대 고독의 세계, 말죽거리 주유소는 부패한 이 세상을 드러내는 가시공간이다. 그 공간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알바노인은 고독의 표상이다. 밤새 침침한 눈을 부비며 주유를 해야 하는 노인의 삶은 행복하다고 말 할 없을 것이다. 궁핍한 삶은 노인이 건너온 부패한 세상과 무관하지 않다. 김윤배/시인<용인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