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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배시인의 감동이 있는 시

간결한 그리움ㅣ박후기


간결한 그리움


박 후 기

 

가장 간결한 그리움은

편지 봉투에 쓰인

너의 주소다

 

가장 간결한 슬픔은

되돌아온 편지에 적힌

너의 이름이다

 

묘비명처럼,

우리의 그리움은

이름으로 가슴에

남겨지는 것이다

 

이 시는 몇 번이고 다시 읽게 한다. 다시 읽으며 젊은 날의 닿지 않았던 편지를 생각하게 한다. 절절하지 않은 사랑이 있을까? 끝내 이루어진 사랑이 있을까? 아프지 않은 사랑이 있을까? 애닳지 않은 사랑이 있을까? 그리하여 미칠 것 같은 몇 날이, 아니 몇 달이, 아니 몇 년이 가고도 불현듯 가슴이 저미듯 아려오는 통증을 누군들 겪지 않았을까?


박후기의간결한 그리움은 그러므로 그리움의 노래가 아니라 슬픔의 노래다. 슬픔의 극점은 상실이다. 상실은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에 머물지 않는다. 상실은 세상 모든 것의 상실에 닿는다. 너로 하여 볼 수 있었던 봄이거나 여름, 혹은 가을이거나 겨울의 느낌들을 어찌 하란 말인가. 너로 하여 들리기 시작한 바그너의 장중한 느낌은 어찌 하란 말인가. 너로하여 찾았던 산사에 군락을 이루어 피었던 상사화의 연분홍 꽃무더기는 어찌 하란 말인가.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던 너의 눈동자는 어찌 하란 말인가. 네 머릿결이 눈부시던 날의 첫 키스는 어찌 하란 말인가. 너의 체향이 조금씩 바뀌며 만월로 기울던 너의 그림자를 어찌 하란 말인가.


이 시의 비의는 간결한에 있다.‘간결한은 그리움과 슬픔을 꾸며주는 말이지만 꾸밈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간결한 그리움은 날카롭고 예리한 느낌으로 가슴을 파고든다. 간결한 슬픔은 예리하다기 보다 깊이 스며든다는 느낌으로 온다. 간결한 앞에 놓인 부사가장은 예리한 그리움의 느낌과 스며드는 슬픔의 느낌을 한 층 강화한다.


이 시를 몇 번이고 다시 읽은 것은 이 느낌을 좀 더 확실하게 확인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너에게 부칠 편지 겉봉의 주소를 쓰고 나서 느끼는 그리움은 한 줄 주소처럼 간결할 수 밖에 없을 것이지만 그 한 줄 주소에 수많은 사연이 내장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게 부친 편지는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되돌아 왔다. 한 줄 주소가 그리움이었다면 이제 되돌아온 편지의 슬픔은 너의 이름이다. 수백 번을 불러보아도 대답 없는 너의 이름이다. 묘비명처럼 가슴에 남겨질 너의 이름이다. 김윤배/시인<용인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