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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진의 북소리

최은진의 BOOK소리 139

이별여행

이토록 절묘한 사랑의 단상

저자 : 슈테판 츠바이크 / 출판사 : 이숲에올빼미 / 정가 : 9,000



가난하지만 능력있는 청년과 그의 사장 부인과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렇게 얘기하고 보면 불륜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부도덕하고 진부한 스토리. 하지만 이 뻔한 이야기를 뻔하지 않게 만드는, 아름다운 단어와 문장의 적절한 조합으로 우리를 놀라게 하는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 사랑은 역시 타이밍이라는 불변의 명제를 다시 한 번 각인 시켜주는 작품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그래서 더 애틋한 사랑의 시작, 그리고 그 사랑이 낡아가고 세월 앞에서 결국은 조용히 재가 되어버리는 사랑의 끝을 보여주는 작품. ‘사랑이란 시간의 무게와 자신이 만든 색깔이 덧입혀지면서 변해버리고 마는 거니까.


9년 만에 기차역에서 만나 이별 여행을 떠나게 되는 남녀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그들의 특별한 듯 평범한 사랑이야기. 병들어가는 사장의 제안을 못 이겨 개인비서로 들어간 저택에서 첫눈에 반해버린 여자. 사랑이라고 감히 생각할 수 없었고, 자신조차 철저히 속인 혼란스러운 감정. 그 감정을 사랑으로 인정하는 과정은 어떻게 시작될까? 그 과정의 황홀한 순간들을 기가 막힐 정도로 아름답고 절묘하게 묘사했다. 그러나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열정적이고 폭발적이었던 그 사랑도 변한다. 멕시코로 떠날 수밖에 없는 현실과 전쟁이라는 가혹한 상황이 그들에게 주어지면서 떨어져있는 공간과 흘러가는 시간은 그들에겐 그렇게 가혹했다.


긴 세월동안 남자와 여자는 기억으로만 서로를 떠올린다. 그게 완전한 그 사람이었을까? 상상 속에서만 살아있는 사람. ‘과도한 업무로 불태워버린 하루하루가 재가 되어 그녀에 대한 기억 위에 차곡차곡 쌓이고 그녀에 대한 생각은 불길처럼 뜨겁다고 생각하지만 그 불을 덮은 잿빛층은 날이 갈수록 두꺼워지는 게 현실이었다. 사랑이라고 믿었던 감정이 결국 영혼 없는 과거의 그림자 같은 것이었다는 사실을 그는 알아버린다. 가까운 듯 멀기만 했던 그녀가 읽어주는 베를렌의 시가 이들의 사랑을 절묘하게 담아내고 있다. “쓸쓸하고 얼어붙은 오래된 정원에서 두 유령이 흘러간 과거를 찾고 있네<용인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