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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아! 문제는 문화야

이경철(시인· 전 중앙일보 문화부장)


[용인신문] 얼마 전 용인 처인구 원삼면 사암리에 있는 스승 댁을 오랜만에 찾았다. 서울 유명 사립대 총장까지 지내다 내려와 전원주택을 짓고 사시는 곳이다. 단지 앞에는 용인농촌테마파크가 넓게 펼쳐져 철마다 꽃을 거저 완상할 수 있는 곳. 이른 뙤약볕 자운영 꽃 둔덕 아래 우산만한 연잎이 짙푸른 그늘을 드리우며 금방이라도 꽃을 피울 것 같았다.


그래 요즘 사는 재미 어떠시냐 물으니 처음엔 낯설고 새로워 좋았는데 이젠 낯익고 친밀감 있어 좋으시단다. 10년 살다보니 이웃도 생기고 동호회며 마을모임에도 나가 즐겁게 보내신단다. 그런데 요즘 땅값, 집값이 두 배, 세 배 너무 올라가며 혹 이 좋은 공동체가 사라질까 염려스러우시다는 것이다.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가 원삼면에 들어서기로 확정되며 땅값이 오르리라는 건 알았지만 너무도 급히 뛴다는 것. 특히 외지인들이 돈 싸들고 훑고 다니며 공동체 인심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판교 벤처밸리를 문자 그대로 조그만 골짜기 촌으로 만들 세계 최첨단 반도체산업 집합단지를 필두로 지금 용인은 개발호재로 한창 부풀어 오르고 있다. 마북·보정 플랫폼시티 정부 수도권3기 신도시포함이며 용인경전철 연장, 수도권광역급행철도 구성역 확정 등등. 인구 100만을 넘어선 용인시가 메트로폴리탄 중핵도시로 거듭날 호기를 맞고 있다.


한반도 중앙에 위치한 사통팔달 용인 입지로선 당연한 결과다. 가장 큰 강인 한강의 물줄기를 타는 곳이라 구석기, 신석기 유물과 유적도 많아 민족의 역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용인은 살기 좋은 터였음을 입증하고 있다. 그래선지 삼국시대는 이곳에서 각축을 벌이며 서로 차지하기를 반복했다.


내가 사는 모현읍에서 만도 청동검을 제작하는 틀인 거푸집이 발굴됐다. 집 앞에는 고인돌도 있다. 청동 칼을 대량으로 제작하고 수백 수천 명의 힘이라야 축조 가능한 고인돌이 이곳이 청동기시대에 세운 최초의 우리 민족국가 고조선의 주요 거점임을 입증해주고 있다.


고인돌 뒤로 연연이 솟아있는 노고봉, 마구산 등 산 이름 또한 만물을 낳은 대모(大母) 마고할미의 신화시대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앞으로는 경안천이 한강으로 유유히 흘러드는 산고수명(山高水明)한 금계포란(金鷄抱卵)의 명당이 용인이다. 그래선지 고려 말 충신이자 이 몸이 죽고 죽어 무엇이 될꼬하니……의 단심가(丹心歌)를 지은 정몽주, 조선조 대제학에 삼정승까지 지내고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는 국민시조를 지은 약천 남구만의 묘역은 안고 있는 곳도 용인이다.


이렇게 살기 좋고 유서 깊은 용인은 지금 우리에게 어떻게 각인되어 있는가. 문자 그대로 입지(立地), 명당(明堂)만이 용인을 묶고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땅 자체가 용인을 자랑하고 있을 뿐 이 용인시, 공동체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자랑할 문화가 내가 보기엔 약하다.


도시나 정치나 직장 등 아무 곳에나 들어붙어 그 특색을 고상하게 드러내게 하는 문화란 무엇인가. 한 공동체 구성원들의 특유한 정신적, 지적, 감성적, 물질적 공통점이다. 공동체를 총체적으로 드러낼 혼이 구성원들의 몸과 마음에 밴 스타일, 제도가 문화다. 그런 문화가 없다면 공동체는 공동체로서 존속할 수 없음을 역사상 명멸했던 여러 민족과 도시들은 보여줬다.


좋은 입지로 메트로폴리탄으로 도약할 호기를 맞고 있는 용인이 놓쳐서는 안 될 것이 이 문화다. 유서 깊은 용인문화를 발굴, 정체성을 규명해 시민의 속 깊은 자부심을 높여야한다. 각종 문화 활동을 적극 육성, 지원해 시민의 삶의 질을 높여야한다. 통상의 행정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시와 문화단체, 시민들을 엮고 지원하는 문화 행정, 거버넌스가 용인에는 그 어느 지자체보다 요긴한 때다.

 


약력


1955년 출생. 동국대 국문과와 대학원 졸업. 문학박사.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와 문화부장, 문화전문기자, 문예중앙, 랜댐하우스, 솔출판사 주간 등으로 일하며 다수의 현장비평적인 평론 발표. 동국대, 경기대 겸임교수 등 역임. 2010시와시학으로 시인 등단. 저서로는 천상병, 박용래 시 연구, 21세기 시조 창작과 비평의 현장, 미당 서정주 평전, 현대시에 나타난 불교와 시집 그리움 베리에이션, 공저 대중문학과 대중문화, 천상병을 말하다와 편저 한국 현대시 100년 기념 명시, 명화 100선 시화집 꽃필 차례가 그대 앞에 있다, 시가 있는 아침. 현대불교문학상, 질마재문학상, 인산시조비평상, 동국문학상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