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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사람 용인愛

배추 모종 구하기

김종성(소설가, 전고려대 교수)


[용인신문] 내가 대학에서 퇴임한 것이 작년 2월 말이었다. 아침 9시쯤 일어나 자료와 연구서를 읽고 글을 쓴다. 어둠이 아파트 단지에 내리면 밖으로 나와 1시간 10분 가량 걷기운동을 한다. 집으로 돌아와 씻고 저녁 9시부터 새벽 23시까지 글을 쓰고 잠자리에 든다.


단순화 한 생활 속에서 동백택지개발지구를 벗어나는 날은 내가 서울에 있는 출판사에 한 달에 한 번 정도 나가 출판 기획을 봐주는 날과 한 달에 두 번 정도 이동읍에 있는 텃밭에 나가 농작물을 가꾸는 날이다. 내가 이십여 년 전 용인시로 이사와 처음에 이삿짐을 푼 곳은 이동읍의 농촌 마을에 있는 아파트였다. 그곳에 살 때 채소 농사를 주로 짓는 농민이 주선해준 텃밭에서 농작물을 가꾸는 일을 내가 동백택지개발지구로 이사를 온 후에도 이어가고 있다.


지난 해 8월 하순 용인버스터미널 옆에 있는 종묘사에서 배추 모종을 100포기 사서 미리 축분과 복합비료를 뿌려 놓은 밭에 심었다. 배추 모종을 심은 뒤 가뭄이 계속되었다. 축 늘어진 호박잎들이 차창으로 쓰러졌다. 버스에서 내려 슈퍼에서 생수를 3병 사들고 텃밭으로 갔다. 배추들이 모두 시들시들하였다.


오래간만이요.” 지나가던 농민이 말했다.

가물어 큰일입니다.”


양동이에 풀을 뽑아 담고 있던 내가 허리를 세우며 말했다.

양동이에다 저 물을 퍼 담아 쓰면 될 게 아니요.”


내 앞으로 가까이 다가온 농민이 34미터 옹벽 아래로 흘러가는 냇물을 가리켰다.

저 물을 무슨 수로 양동이에다 퍼 쓴다 말입니까?”

내가 뺨에 진흙이 묻어 있는 농민을 쳐다보았다.

“.......”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던 농민이 논 옆의 둔덕에 세워 놓은 농막으로 갔다. 이윽고 농민이 흰 밧줄을 손에 들고 되돌아왔다


, 이 밧줄을 중간 중간 매듭을 진 다음 양동이 손잡이에 묶으면 되요.” 농민이 밧줄을 묶은 양동이를 물속으로 집어던졌다.


이제 천천히 잡아 당겨 봐요.” 물이 출렁거리며 올라왔다.


고맙습니다.” 내가 물이 가득한 양동이를 밭이랑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양동이에 물을 퍼담아 배추밭 이랑에 물을 뿌렸다.


산그늘이 밭이랑에 내렸다. 나는 룩색을 둘러메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버스 차창으로 비닐하우스와 벼들이 스쳐 지나갔다. 농가들이 느릿느릿 걸어왔다가 뒤로 밀려났다. 나는 왜 양동이에 밧줄을 묶어 물을 끌어올려 쓸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을까. 그것도 무려 20여 년 동안이나. 차창에 고층 아파트 단지에서 쏟아져 내리는 불빛이 쏟아져 내렸다. 목이 말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