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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진의 북소리


[용인신문]

최은진의 BOOK소리 149

한밤중, 도깨비와 통쾌한 씨름 한 판!

청기와주유소 씨름 기담

저자 : 정세랑 / 출판사 : 창비/ 정가 : 8,800




“2019년 책 한권도 안 읽은 여러분, 반갑습니다!” ‘소설의 첫 만남시리즈가 독서 포기자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새로운 소설 읽기 프로젝트로 기획된 시리즈 중 첫 번째 선보인 작품은 정세랑 작가의 경쾌하고 기묘한 이야기. 문학성이 뛰어난, 그러면서도 요즘 감성이 담겨있다.


짧고 임팩트가 있는 스토리에 만화책을 연상시키는 생동감 넘치는 일러스트가 곁들여져 책 읽는 즐거움을 모르는 사람들을 이야기에 푹 빠질 수 있게 하기에 충분하다. “열 살이 되기 전에 이미 60킬로를 넘어버린, 그리하여 할 거라곤 씨름밖에 없었으나 프로 세계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끝나버린 전직 씨름 선수의 인생 역전을 위한 씨름 한 판!


올해 책 한권도 안 읽은 사람뿐만 아니라 책 꽤나 읽는다는 사람도 이 신나는 이야기 한 판에 여름밤의 열기를 잠시나마 잊을 수 있을 것이다.


주유소 알바로 희망 없는 삶을 무력하게 이어가는, 실패한 씨름 선수인 주인공은 주유소 점장으로부터 이상한 제안을 받게 된다. 도깨비와 씨름 대결로 기울어진 집안을 대신 일으켜 달라는 것! 그러면 앞으로의 50, 편안하고 순탄한 삶을 보장해 준다고. 그를 양자로 들여 재산도 물려주고 골프선수도 만들어 주겠다고. 점장의 말을 다 믿은 건 아니었지만, 어차피 잃을 것 없는 인생, 그는 터무니없는 제안을 받아들인다. 희망이라고는 없는 자신의 삶과 할머니의 노후를 위해. 이길 수 없으면 비기기라도 하자며 안간힘을 쓰지만. 도깨비와의 씨름 한 판은 쉽지 않다. 도깨비가 나의 중심을 무너뜨리고 할머니가 사준 점퍼에 구멍을 내자 그는 한 번도 내 본 적 없는, 이십년 어치 신경질을 쏟아낸다. “, 진짜 나도 좀 살자!”라며.


평범한 이야기로 시작해 작가 특유의 상상력이 더해져 점점 기이해지지는 이야기. 옛날이야기에 단골로 등장했던 도깨비를 지극히 현대적이라 할 수 있는 홍대 앞 주유소로 데리고 왔다. 과거와 현재를 자연스럽게 이어준다. 누구나 한번쯤은 꿈꾸어 봤을 특별한 행운과 마법 같은 인생역전. 느닷없이 찾아온 도깨비와의 한 판 승부에 마지막 죽을힘을 다하는 주인공을 저도 모르게 응원하게 되고 그가 도깨비를 쓰러뜨렸을 땐 덩달아 신이 난다. 앞으로 그에게 펼쳐질 멋진 삶은, 그 스스로 얻어 낸 것이다. 물론 거기엔 약간의 행운이 한 몫 했지만. 세상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음에 대한 작가의 위로가 아닐까 싶다. 책과 멀어진 이들에게 마중물이 되어 줄, 짧고 가볍고 유쾌한 독서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