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 언
이승하
말을 할 듯 입 열었으나
그대
다만
미소와 손짓만 건네는구나
잘못했다
사랑한다
보고 싶을 거라는 말 대신
그대
미소로 눈물로
그냥
아무 말 없이
가달라는
떨리는 손짓으로
이승하 시인은 생명예찬의 시인이다. 그는 생명이 잉태되는 순간부터 생명이 태어나 어미의 젖을 빠는 숭고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그리하여 병들고 죽는 과정까지를 노래하는 시인이다. 그러므로 생로병사의 통과의례는 그의 시세계를 이끌어가는 상상력의 근원을 이룬다고 보여진다.
「묵언」은 사랑의 생명성과 그 헤어짐의 안타까움을 노래한 시편이다. 사랑의 시작은 설렘이다. 설렘은 한 영혼이 다른 영혼을 향해 문을 두드리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문이 열리면 사랑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 시는 사랑도 생로병사라는 통과의례를 거친다는 가정 아래, 사랑의 종언을 말하는 장면이다.
시제를‘묵언’이라 한 것으로 보아 할 말을 참고, 몸짓으로 말을 대신하는, 아니 몸짓으로 말보다 더 아프게 말하는‘그대’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것으로 읽힌다. 헤어지며‘그대는 다만 미소와 손짓만 건네는’데 이때의 미소는 울음을 머금은 미소인 것을 화자는 알고 있는 것이다.
‘잘못했다/사랑한다/보고 싶을 거라는 말 대신’미소로, 드디어 눈물로 이별을 아파하는 그대를 보고 있는 화자 또한 속으로 울고 있었을 것이다. 화자가 무슨 말인가를 하고 싶은 표정을 읽은‘그대’는 제발 아무 말 없이‘가달라는/떨리는 손짓으로’이별을 완성하겠다는 것이다.
이 시를 연시로 읽지 않는 것이 이승하 시인에 대한 예의 일 것이다.「묵언」은 어쩌면 임종을 앞 둔 혈육 사이의 무언의 대화일지도 모른다. 시집『생애를 낭송하다』에서. 김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