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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진의 북소리


[용인신문]

최은진의 BOOK소리 150

손의 언어로 말하는 침묵의 세계

용의 귀를 너에게

저자 : 마루야마 마사키 / 출판사 : 황금가지/ 정가 : 13,800



전설 속 동물, 용에겐 귀가 없다. 뿔로 소리를 감지하는 용에게 쓸모가 없어진 귀는 결국 퇴화하여 바다에 떨어져 해마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라는 글자는 그래서 용의 귀라고 쓴단다. 들을 수 없는 사람들이 가진 용의 귀는 그들에게 침묵의 언어로 소통하게 한다. 일본 농인 사회의 현실을 촘촘하게 그려내 호평을 얻은 사회파 미스터리 <데프 보이스>의 작가 마루야마 마사키. 그가 그려내는 침묵의 세계는 하루종일 불필요한 소음에 시달리는 평범한 우리에겐 경이롭게만 보이는 수화의 세계. 그리고 들을 수 있지만 말할 수 없는 함묵중과 발달장애, 싱글맘 등 사회전반의 폭넓은 주제를 다루며 사회의 소수자들이 처한 현실을 짚어낸다.


들리지 않는 부모에게서 태어난 들리는 아이, 코다(Children of Deaf Adults)인 주인공 아라이. 그가 맡은 수화통역사란 농인과 청인의 세계를 연결해 주는 것. 강요에 의해 거짓자백을 하고 강도죄로 재판을 받게 된 하야시베와 농인들을 상대로 사기와 협박을 한 혐의로 체포된 신카이를 대변해 법정 통역과 취조 통역을 맡게 된다. 농인의 입장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과 의사를 전달하는 말하는 것이 같은 것이 아님을 그는 주장한다. 강제주입식으로 훈련받은 농인들의 청각구화법은 그들에겐 이 아니었다. 그건 단순한 발화에 지나지 않다는 것. 함묵증에 걸린 소년, 에이치가 수화로 소통을 하게 되는 장면에선 우리가 몰랐던, 또 다른 언어인 수화의 역할이 돋보인다. 이렇게 이 책은 소리가 들리지 않는 사람들의 세상과 복잡한 미스터리가 만나 감동적인 순간들을 만들어낸다.


작가는 단순히 농인과 수화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사회 속에서 다양한 소수자들이 처한 현실을 세심하게 조명했다. 주제는 가볍지 않지만 형식은 법정 스릴러물을 표방하고 있어 쉽게 읽힌다. 공포영화에서 가장 우리를 공포스럽게 하는 건 음향효과라고 들었다. 소리가 사라진 공포의 세계는 더 이상 짜릿한 스릴러물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도 우린, 소리가 없는 이들의 세계를 감히 가늠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같은 세계에서 살고 있지만 몰랐던, 그들의 세계를 편견 없이 따뜻한 시선으로 우리가 마주할 수 있게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