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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배시인의 감동이 있는 시

봄의 정치ㅣ고영민

봄의 정치

                   고영민


 

봄이 오는 걸 보면

세상이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봄이 온다는 것만으로 세상이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밤은 짧아지고 낮은 길어졌다

얼음이 풀린다

나는 몸을 움츠리지 않고

떨지도 않고 걷는다

자꾸 밖으로 나가고 싶은 것만으로도

세상이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몸을 지나가도 상처가 되지 않는 바람

따뜻한 눈송이들

지난겨울의 노인들은 살아남아

하늘을 올려다본다

단단이 감고 있던 꽃눈을

조금씩 떠보는 나무들의 눈시울

찬 시냇물에 거듭 입을 맞추는 고라니

나의 딸들은

새 학기를 맞았다

 

고영민 시인의 봄은 정치로서의 봄이다. 정치를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으로,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는 행위라고 말 할 수 있다면, 봄은 그것들을 대신해서 세상이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움츠리지도 않고 떨지도 않고 걸을 수 있는 봄은, 억압하는 모든 것들이 사라진 밝고 건강한 국가에서나 가능한 봄이다. 그런 사회에서는 몸을 지나가도 상처가 되지 않는 바람이 있고 따뜻한 눈송이들이 축복처럼 내리는 것이다. 혹독한 시대를 건너온 노인들은 살아남아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이고, 나무들은 단단히 감고 있던 꽃눈을 떠 보는 것이고, 고라니는 찬 시냇물에 거듭 입을 맞추는 것이다. 마침내, 시인의 딸들은 새 학기를 맞는 것이지만 여기서 새 학기는 새로운 세상의 은유로 읽힌다. 봄이 오다는 것만으로 세상이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 시대는 건너가기 힘든 시대다. 밤이 짧아지고 낮이 길어진다면 봄이 오는 길목의 현상이지만 어두운 시대가 가고 있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시집봄의 정치에서. 김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