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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진의 BOOK소리 158

[용인신문]

최은진의 BOOK소리 158

당신의 경험으로부터 시작된, 당신과 지극히 가까운 이야기

눈과 사람과 눈사람

◎ 저자 : 임솔아 / 출판사 : 문학동네/ 정가 : 12,500원

 

 

‘눈사람’이란 얼마나 이상하고 매력적인 말인가. 차가운 눈과 따뜻한 심장이 만나 ‘사람’이 만들어진다는 건 마법에 가까운 일인지도 모른다. “눈과 사람과 눈사람”이 하나의 배경 속에서 찍힌 한 장의 사진이 자연스레 연상되는 소설. 고통을 객관화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임솔아 작가의 차갑고도 따뜻한 여덟 편의 이야기. 작가의 말에서 밝혔듯이 열여덟 살부터 스물다섯 살까지의 인물이 순차적으로 등장하는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모두 임솔아 작가 자신인 듯하다. “내가 쓴 소설 곁에 내가 있고 싶다”고 그녀는 말했다. 책을 읽고 나면 당신이 주인공들인 영후, 유림, 수희, 지은, 은지, 민주 옆에 체온을 나눠주며 가만히 있어주고 싶어질 것이다.

 

어쩌면 당신도 살면서 한번쯤 목격했던 이야기들, 알지만 방관했거나 애써 지워버렸던 이야기들을 마주하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 감추고 싶었던 마음을 들켰을 때처럼 가슴이 쿵쾅거린다. 여덟 편의 작품 속 그들은 열여덟 살부터 스물다섯 살이 되는 동안 겪었거나 의지와 상관없이 벌어진 이야기를 순차적으로 들려준다. 슬픔을 멋지게 포장해 상투적으로 다루는 아빠를 못 견디는 영후가 있고, 이름과 이력을 바꿔가며 살아야만 하는 나와 지은이가 있고, 시적 자유와 낭만성으로 포장한 교수의 폭력을 견디는 정원이 있고, 자신보다 약한 존재를 보며 자신의 삶은 정상이라고 착각하는 언니가 있고, 정상이라는 허상에서 탈피해 평화를 찾는 민주가 있다. 그 청춘의 시간들과 싸우고 견뎌야 했을 그들을 안아주고 싶다.

 

‘선함’을 가장한 폭력성과 뻔한 위로로 포장된 억압을 보면서 부끄러워진다. 내 안에 나도 모르게 숨어있던 마음을 엿보는 기분으로 주인공들을 만나보자. 눈이 소복히 쌓인 겨울 들판에서, 그들이 내어놓은 발자국에 우리 발자국을 넣어보면 눈사람을 만들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누군가 만들다 버리고 간 눈덩이를 착한 사람들과 함께 굴려서 멋진 눈사람을 만들자. 한 줄기 희망 같은 카메라 셔터 불빛에 눈을 찔끔 감게 되는 순간을 꿈꿔보자. 따뜻한 추억 한 컷을 남기고 싶어지는 이 겨울이 다가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