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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배시인의 감동이 있는 시

봉양ㅣ황인찬

봉양

                황인찬

 

친구의 과수원에 놀러 갔다

 

과수원에서는

벌을 많이 친다고 했다

 

빛 많은 날에는

벌들 우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고

 

꽃나무가 늘어서 있고

친구는 벌들과 같이 바쁘다

 

다른 세상 같아

무심코 나온 말에 친구는 말이 없다

 

과수원을 한바퀴 돌았다

사과꽃에 벌이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다

 

왱왱대며

움직이며

 

빛 소음 운동 빛

 

모두 부수고 있었다

 

황인찬은 2010년 『현대문학』을 통해 시단에 나왔다. 시의 특징은 시니시즘이다. 세상 모든 사물을 뜻 없이 본다. 그리고 냉소 한다. 이런 특징은 그의 두 번째 시집 『희지의 세계』에서 분명해진다. 그의 시에 매력을 느끼는 것은 김현 시인의 말처럼 차가운 정념으로 빚어낸 시이고, 슬픔도 놀라움도 없는 시이고, 죽음을 선험하게 하는 시이고, 어디에도 나온 적이 없는 시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펴낸 『사랑을 위한 되풀이』도 다르지 않다. 그는 어떤 인터뷰에서 ‘메시지를 던지는 건 의미가 없어요. 아주 일시적이고, 심지어는 내가 무슨 메시지를 갖고 있었는지 나도 잘 몰라요. 그런 건 다 착각이에요.’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므로 그의 시에는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없다. 그가 말한 것이 전부다. 독자는 느끼면 된다. 의미를 찾기 위해 애쓸 필요 없다. 「봉양」은 과수원을 하는 친구에게 놀러가서 본 벌에 관한 시다. ‘꽃나무가 늘어서 있고/ 친구는 벌들과 같이 바쁘다’이 풍경을 보고 ‘다른 세상 같’다고 무심코 말하지만 친구는 말이 없다. 친구에게는 절실한 삶의 현장이고 시인에게는 아름다운 풍경인 것이다. 벌들은 왱왱대며 빛 소음 운동 빛을 모두 부수고 있다고 느낀다. 창비 간행 『사랑을 위한 되풀이』중에서. 김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