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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불·열정… 혼의 결정체

용인의 문화예술인 5. 도예가 마순관 명장

 

 

한익환 선생과 만남 백자의 매력에 빠져
무궁무진한 표현의 자유 만끽 최고의 예술
자유분방·현대적 감각 ‘분청’ 사랑에 풍덩

 

[용인신문] 백암도예 마순관 명장의 손을 보면 투박하게 얽어있다. 평생을 흙과 불을 만지면서 스스로 흙이고 불로 살아온 이 시대의 진정한 장인의 손이 아닐 수 없다.

 

마순관 명장은 고령토 생산지로 유명한 용인 백암면 고안리에서 태어났다. 자연스럽게 흙을 가지고 놀던 어린시절부터 이미 도예가의 길은 예견돼 있었다.

 

그가 본격적으로 도자기를 빚기 시작한 것은 군대 제대 후 부터였다. 고향 마을에 돌아와 보니 우리나라 백자의 일인자인 한익환 선생이 공방을 하고 있었다.

 

하얀 색이어서 백자라고 할 수 있을까.

 

한익환 선생은 신비로운 흰색을 표현하고 있었다. 단순하게 하얀색이 아닌,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오묘한 백색의 미를 발하고 있는 한익환 선생의 백자에 자신도 모르게 이끌렸다.

 

마순관 명장은 자연스럽게 백자로 입문했다. 태어나면서부터 흙을 빚기 좋아했던 마순관 명장은 하면할수록 겉잡을 수 없이 도자기의 매력에 점점 더 빠져들었다.

 

“표현이 무궁무진 한 게 황홀했어요. 표현의 자유가 엄청났거든요. 묘한 매력에 강하게 이끌렸습니다. 도자기에 평생을 걸었지요.”

 

형태면 형태, 색이면 색 어느것에서도 무한대였다.

 

말년에 도예를 한 피카소도 입체에 회화작업을 시도하면서 무궁무진한 표현의 자유를 만끽했고, 마침내 도예는 최고의 예술이라고 극찬하지 않았던가.

 

특히 색의 표현에 있어서 도자기는 무한대다.

 

“백자의 색 자체가 무한대인 매력이 있습니다. 백자의 색이 흰색이 아닙니다. 청백자, 유백자, 설백자 다양합니다.”

이런 색의 변화는 태토에 기반 한다. 그 다음 유약 칠하는 데 따라 달라진다.

 

백암 흙이 좋은 것은 당연하고 유약의 조합과 불 때기까지의 전 과정을 거치다보면 예상할 수 없는 색의 향연이 끝 없이 펼쳐진다.

 

 

마순관 명장은 93년부터 분청사기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표현이 더욱 자유분방한 분청은 마순관에게 치명적 매력으로 다가왔다. 분청은 현대인의 감각에 어울렸고 현대인이 좋아하는 자기이기도 했다.

 

분청으로 전환하는 데는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분청사기 명품전이 열렸는데, 마순관 명장이 시연작가로 선정됐다. 당시 삼성으로부터 기능과 재현 모든 면에서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았기에 선정될 수 있었다. 이때 분청 붐이 일던 때였는데 시연 이후 분청의 길로 들어갔다.

 

분청은 백자, 청자, 옹기의 기법 모두를 접합할 수 있었다. 모든 기법이 다 들어있는 도자기 장르였다. 거기에 상감, 인화문, 철화기법 등 그림이나 조각 여러 기법을 다 적용할 수 있었다. 투박하고 질박하기에 분청이 쉬울 것으로 오해받지만 진정한 맛은 어느 경지에 올라서야만이 표현 가능한 고도의 기능이 필요한 장르였다.

 

마순관 명장은 분청에 활달한 그림으로 생기를 불어넣었다. 철화기법, 상강기법, 박지기법, 인화문기법 등 마순관 명장은 다양한 분청자기를 탄생시키면서 어느덧 분청의 1인자가 됐다.

 

마순관 명장은 태토와 유약을 끊임없이 연구 개발한 결과 누구보다 제일 많은 유약을 확보하고 있다. 도자기 하는 사람들이 보면 놀랄 정도다.

 

마순관의 도자기가 특별한 것은 태토에서도 진가가 발휘된다. 그는 태토도 사다가 쓰지 않고 직접 만들어서 사용한다.

“이 세상의 모든 무기물은 다 도자기의 원료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밟고 다니는 흙은 다 쓸 수가 있다고 봐야죠.”

그는 남과 다른 차별화된 작품을 내놓게 된다. 흙 자체의 질감을 살리기도 하고, 색깔의 표현을 달리 하면서 그만의 진가를 발휘한다.

 

현대 도자기는 디자인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전통의 맥을 잇는 것 못지않게 산업화에 비중을 둔다. 도자기산업이 발전해야 도자기의 명맥을 이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늘 공부하고 연구한다. 그러나 데이터도 중요하지만 창작의욕을 갖고 연구해서 마지막으로 불의 심판을 받는 게 도자기라는 생각이다.

 

“이론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유연성이 많은 게 도자기입니다. 40년을 했어도 기가막히게 했어도 불에서 잘못 나오면 끝인 것입니다.”

 

늘 새로운 작품을 위해 죽는 날까지 만들고 또 만들어 나가는 길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