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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진의 북소리

[용인신문]

최은진의 BOOK소리 164

“당신은 우주에서 단 하나뿐인 존재”

너는 너로 살고 있니

◎저자 : 김숨 /출판사 : 마음산책/ 정가 : 13,800원

 

 

“당신이 우주에서 단 하나뿐인 존재라는 자명한 사실을 나는 잊고는 합니다. 나 자신 또한 우주에서 단 하나뿐이라는 사실은 이미 오래전에 망각했습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들을 말하지 못하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행동으로 옮기지 못할 때가 많아지면서 나의 원래 모습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으며 사는 우리는 ‘온전한 나’보다는 ‘사회적 나’로 변해야 살아가기 편하니까. 단 한 번도 무대에서 주인공인 적 없었던 배우, 선희가 11년째 식물인간 상태인 경희를 간호하며 자아를 찾아가는 이야기가 편지 형식으로 펼쳐진다. 타인에 의해 깎여지고 혹은 나에 의해 스스로 다듬어져, 내가 사라져버렸다는 생각이 들 때 “너는 너로 살고 있니”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책.

 

연극 무대 위에서 발작을 일으킨 후 무명배우의 삶을 끝내고 난생 처음 가보는 도시, 경주로 내려간 선희. 얼굴도 몰랐던 한 여자를 위해 간병인으로 살게 된다. 11년째 누워만 있는 경희, 가족에게도 잊혀져 가다 못해 그만 죽길 바라는 은밀한 바람의 대상이 되어 버린다. 무명배우의 삶을 살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무대에서조차 제대로 서지 못하고 떠나는 선희와 11년째 의료기계에 생명을 부지하며 살아가는 경희의 삶은 어딘가 닮아 있다. 어쩌면 우리 모두의 삶은 닮아있는 건지도 모른다. 결핍과 허무와 불안이 없는 삶은 없으니. 살아있으나 죽은듯한 선희와 죽은듯하지만 여전히 살아있는 경희, 어느 쪽이 더 “너는 너로 살고 있니”라는 물음에 더 긍정적일 수 있을까?

책을 다 읽고나면 “너는 너로 살고 있니”라는 문장을 자꾸 되뇌이게 된다. 매너리즘에 빠져 어떤 흐름에 몸을 맡긴 채 그저 떠내려가다가 어느 날 문득 모든 것이 허무해지는 건 이 책 주인공 선희만이 아니다. 나는 나로 살고 있다는 답이 망설여진다면 고대의 능이 삶의 고락을 가로지르는 도시, 경주로 무작정 내려가 보시길. 아름다운 도시의 죽음 사이로 한가로이 거닐다 보면 간병인을 자처하지 않아도, 당신이 “우주에서 단 하나뿐인 존재라는 자명한 사실”을 절대 망각하지 않게 될 테니. 당신에게 주어진 삶이 15년의 무명배우 삶이던, 11년 식물인간 상태의 삶이던, 당신은 누구보다 소중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