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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사망설과 오보(誤報)로 마비된 언론의 민낯

오룡(평생학습 교육연구소 대표/오룡 인문학 연구소 원장)

 

[용인신문]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는 <햄릿>의 실존적 고민을 드러내는 명대사다. 음모와 술수, 허위와 기만으로 가득 찬 궁중은 왁자지껄했다. 은폐와 모략을 감추려는 자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햄릿을 유혹했다. 고뇌하던 햄릿은 침묵의 공간에서 독백으로 외쳤다. 하지만 빈 줄만 알았던 침묵의 공간은 결코 비어있지 않았다.

 

사악한 세력에 맞설 용기는, 꼭 말로만이 아닌 끊임없는 행위로 햄릿을 응원했다. 빈 공간 속 다수의 관객들은 ‘때맞춰 손뼉 치기, 깊은 한숨 쉬기, 대놓고 감탄하기’를 통해 말보다 격한 감정으로 지지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영화가 아닌 연극으로 오래 살아남는 이유다.

 

가끔은, ‘분노’도 강력한 단합으로 표현된다. ‘분노’는 조절의 문제를 넘어, 주체자의 문제가 되기도 한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남용되고 혼용되는 경우에서 그렇다. 특히 많이 가진 자의 분노 표출은 법적으로 선처되고, 약자의 분노는 사회질서를 파괴하는 폭력으로 범주화 시키는데 ‘화’가 난다. 그러니 분노의 ‘인과’를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

 

우리는 오래도록 도덕의 묵시적 규범으로 ‘흥분하지 말라’와 ‘참으라’는 소리를 듣고 살았다. ‘가만히 있으라’의 비극은 세월호 참사와 맞물린다. 보편적인 우리들은 무턱대고 분노하지 않았다. 사회적인 인간은 아무에게나 화를 내지도 않는다. 비정상적인 인간들만이 닥치는 대로 분노했고, 거리낌 없이 화를 냈다. 그래서 조금 억울하다. 정의를 위해 분노가 필요할 때, ‘화’ 내지 못한 것이….

 

1986년 11월 16일, 조선일보는 세계적인 호외를 보도했다. 기사의 첫 문장은 “북괴 김일성 총 맞아 피살됐거나 심각한 사고 발생으로 사망 확실시된다.”였다. 사망설의 이상 징후를 간단하게 무시한 언론은 ‘김일성 사망은 특종’이라고 주장했다. 오보(誤報)는 3일 후에 밝혀졌지만 해당 신문사는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지 않았다.

 

‘김일성 사망을 보도하지 않은 일본 언론’ ‘휴전선에서 흘러나온 사망설에 대해 평양의 반응이 없었던 사실에 ‘의문을 갖지 않은 정부 당국’에 대한 점잖은 충고(?)를 먼저 했다. 그러고 나서 ‘이러한 사실에 부주의한 언론이었다고 시인’한 정도였다. 그것도 5일이 지나서야 내보냈을 뿐이다.

 

2020년 4월의 김정은 사망설은 1986년 김일성 사망설을 보도한 언론의 호들갑스러운 오마주였다. 제대로 된 검증 과정을 거쳤는지조차 의심스러운, 탈북자 신분에서 국회의원 당선자로 수직 상승한 태영호와 지성호는 미확인 주장을 무차별적으로 남발했다. 기자들은 저들의 주장을 Ctrl+C 하고, Ctrl+V 하며 무지막지하게 유포했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역사서는 1145년에 출간한 <삼국사기>다. ‘백제 본기 온조왕’조에 “혹은 이르기를 시조는 비류왕으로서 그 아버지는 우태(…)”라고 써 놓았다. 김부식과 <삼국사기> 편찬자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자료를 충분히 검토해서 백제의 시조가 온조왕이라 쓰면서도, 또 다른 자료를 인용하는 교차 검증의 실증적인 입장을 취한 것이다. 이러고 보면 김부식을 보수적인 유학자라고 치부하기 민망하다.

 

김정은 사망을 확신한 2020년 대한민국의 언론인들아. 당신들은 9백 년 전의 고려 시대 사관들보다 하등(下等) 함을 충분하게 입중했다. 취재의 초보적인 원칙을 간단하게 무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들도 일부러 오보를 낸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빌헴름 라이히의 <파시즘의 대중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했을 뿐이다.

 

하지만 앞으로가 더 무섭다. 자기들이 뭘 모르는지 모르는 사람들, 뭘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활발한 공적(公的) 활동을 한다니.

 

김정은 사망설의 오보는 아프지 않다. 다만 오보(=가짜 기사)로 마비된 언론이 불러온 피해 때문 ‘화’가 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