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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배시인의 감동이 있는 시

커밍아웃ㅣ강혜빈

커밍아웃

                          강혜빈

 

축축한 비밀 잘 데리고 있거든

일찌감치 날짜가 지난 토마토 들키지 않고

물컹한 표정은 냉장고에 두고

나는 현관문을 확인해야 해

아픈 적 없는 내일을 마중 나가며

(.....)

아무도 모르는 놀이터에서 치마를 까고 그네를 탓어

미끄럼틀과 시소의 표정

낮지도 높지도 않은 마음을 가지자

혼자라는 단어가 낯설어지면

(.....)

뉴스는 토마토의 보관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설탕에 푹 절여지고 싶어

사소한 기침이 시작된다

내 컵을 쓰기 전에 혈액형을 알려줄래?

 

옷장에서 알록달록한 비밀이 흘러나와

자라지 않은 발목 아래로, 말을 잊은 양탄자 사이로

기꺼이 불가능한 토마토에게로

 

강혜빈은 1993년 성남에서 태어났다. 2016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녀의 첫 시집 『밤의 팔레트』에는 유난히 무지개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무지개는 성소주자, 혹은 성소수자의 프라이드를 상징한다.

그녀의 시「커밍아웃」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은유를 통해 드러낸 작품이다. 첫 행 ‘축축한 비밀 잘 데리고 있거든’에서 성소수자의 비애가 엿보인다. 동성애자라는 사실은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직장의 동료에도 발설 할 수 없었던 비밀이었다. 날짜가 지난 토마토는 동성애자의 은유이므로 ‘아픈 적 없는 내일을 마중 나가’기 위해 물컹한 표정을 냉장고에 감춰야 하는 세월을 살았던 것이다.

늘 혼자였던 성소수자는 ‘아무도 모르는 놀이터에서 치마를 까고 그네를’ 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누구도 토마토 보관법을 알려주지 않아 설탕에 푹 절여지고 싶었던 때가 한 두 번이었을까. 옷장에서 알록달록한 비밀이 흘러나와 어린 날의 기억 속으로, 혹은 말 할 수 없는 답답한 마음 속으로, 이성애자가 될 수 없는 토마토에게로 스며드는 것이다. <문학과지성사> 간 『밤의 파렛트』 중에서. 김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