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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전문가는 없다’. 우리가 역사이기 때문이다

오룡(평생학습 교육연구소 대표/오룡 인문학 연구소 원장)

 

[용인신문] 지난 12월 8일, 필자는 ‘오룡역사TV’를 통해 설민석을 직격했다. 자꾸 선을 넘지 말라는 요구였다. MBC ‘선을 넘는 녀석들’의 격동의 현대사 편에서 ‘5·16 군사정변’을 ‘5·16 군사혁명’이라고 설명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20여일이 지나서 설민석은 여러 논란의 중심 인물이 됐다. 이 모든 사태는 설민석의 의도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의지만 있었던 그의 과욕이 부른 참사(?)인 것만은 분명하다.

 

설민석의 한계는 엄청난 과거의 내용들에 대한 학문적 고찰이 부족했다. 역사 전문가를 표방했다면 사실과 해석, 사실과 가치 사이에서 균형을 잡았어야 했다. 끝없는 사실의 바다에서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만, 오직 그런 것만을 추출했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그것은 방송 미디어의 얄팍한 상술, 자본의 속성을 따라야 하는 시청률의 탓일 수도 있다.

 

“쌤, 신축년에는 뜰거 같아요?” “설민석 보다 오룡쌤!” 며칠 전에 몇몇 지인들에게 받은 카톡이다. 단언컨대 오룡은 ‘역사의 예능화’에서 결이 많이 빗나가 있는 사람이다. ‘역사의 소매상’ 까지는 어찌어찌 할 수 있겠으나 예능 맞춤형 내러티브를 쫓기엔 역부족이다. 순간의 기분은 우쭐(?)했으나 웃을 수는 없었다.

 

‘역사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이 있다. 콜링우드의 말처럼 역사는 ‘가위와 풀의 역사’ 일 수 있다. 역사적 사실은 역사가의 선택과 해석의 과정을 통해 역사가 되는 주관적 산물이기도 하다. 과거에 관한 모든 것이 역사적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는 한 시대가 다른 시대 속에서 찾아내는 기록물이다. 여기에는 역사가의 감정과 생각을 전하려는 의도가 포함된다. 영국의 역사가인 배러클러프는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비록 사실에 바탕을 둔 것이라고는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결코 사실이 아니라 널리 인정된 일련의 판단 일 뿐이다.” 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왜, 설민석은 추락했는가? 그는 사실과 해석, 사실과 가치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바람과 달리 역사는 진실과 거짓이 양립한다. 진실과 거짓은 객관의 포장을 뒤집어 쓰고, 저마다 생각이 다른 경쟁적인 담론이다.

 

모든 역사는 과거사다. 과거는 현재에 비추어질 때에만 이해될 수 있다. 또한 현재도 과거에 비추어질 때만 완전히 이해 될 수 있다. 인간이 과거의 사회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그것이 역사의 기능이며 역사가의 임무이다.

 

그러므로 설민석은 할 만큼 했다. 그의 역할은 여기까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