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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배시인의 감동이 있는 시

꿈과 난로ㅣ정현우

꿈과 난로

                        정현우

 

 

이파리가 가늘게 가지들을 낭독한다

 

불 꺼진 난로, 은색 주전자,

입김은 사라진다

 

모든 슬픔을 한꺼번에 울 수는 없나

아, 난 죽은 사람

 

숨을 거두어가는 일이

새를 데리러 오는 일이

나에게도 일어난 것

 

정현우는 201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첫 시집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가 출간 한 달만에 1만부가 팔렸다. 그는 2006년부터 15년 동안 꾸준히 음악활동을 해온 가수이기도 하다. 2007년 발표한 노래 ‘바람에 너를’로 대형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 1위를 차지하는 등 독특한 이력으로 음악과 문학 양쪽을 활발히 오가고 있다. 그를 오래 기다려온 팬들을 중심으로 한 탄탄한 팬덤이 문학 독자들로까지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시세계의 기본 정조는 슬픔이다.「꿈과 난로」 역시 슬픔의 정조가 묻어 있는 작품이다. 화자는 지금 죽음을 맞고 있다. 바람이 조용히 이파리들을 흔드는 날이다. ‘이파리가 가지를 낭독한다’는 표현은 아마도 자신의 죽음을 애도하는 조문으로 쓴 문장일 것이다.

‘불 꺼진 난로, 은색 주전자,/입김은 사라진다’는 둘째 연은 죽음의 객관적 상관물을 제시하는 문장이다. 꺼져가는 생명, 식어가는 체온, 사라지는 숨을 은유로 보여준다. 셋째 연에 이 시의 시안이 있다. ‘모든 슬픔을 한꺼번에 울 수는 없나’가 그것이다. 모든 슬픔을 한꺼번에 울 수 있다면 이 세상에 가득 찬 슬픔을 되풀이해서 슬퍼하지 않아도 될 일이다. 한꺼번에 운다는 의미는 세상을 한꺼번에 버리겠다는 말이다. 죽음이 한꺼번에 우는 일이다. 이 문장에서 시집 제1부의 제목을 뽑은 것을 보면 이 시가 시인에게 중요한 시인 것이 분명하다. 마지막 연의 ‘새를 데리러 오는 일이’는 영혼을 데리러 오는 일로 읽힌다. 죽음이 그에게도 일어난 것이다. 자신의 죽음을 노래한 사자의 레퀴엠이다. '창비' 간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 중에서. 김윤베/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