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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영의 숲이야기

용인의 노송지대

이대영의 숲이야기

이대영 용인시산림조합 조합장

 


한산이씨 종중산의 노송

 

[용인신문] 한산이씨 종중산을 지키고 있는 기흥구 지곡동 100여 그루의 노송이 설전·후의 세한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꼿꼿하다. 마치 추사 김정희가 그린 국보 제180호 세한도에 ‘날씨가 추워진 이후에야 소나무가 뒤늦게 시듦을 안다’는 글귀대로 꼬장꼬장한 소나무가 시련에 굴하지 않는 충신의 절개를 보여주는 듯하다.

 

한산이씨 종중산은 노송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용인의 노송지대다. 보호수로 지정된 소나무가 시의 관리하에 건강하게 생장하고 있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용인에 자생 소나무가 많았다. 그런데 솔잎혹파리로 인해 한순간에 사라졌다. 솔잎혹파리는 아마 70년대 후반 한차례 훑고 그 후 한 번 더 용인을 훑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재선충과는 다른 솔잎혹파리 유충인데 솔잎 끝 까만색 접착부위 속에 자리하고서 진을 빨아먹는다. 그래서 푸른 이파리가 새빨갛게 말라 죽게 된다. 육안으로 보이는 벌레가 아니어서 발견이 쉽지 않다. 현미경으로 볼 정도로 작은 충이다. 수액이 움직이는 이른 봄이면 수관주사를 줘서 용인의 노송을 지켜내고 있다.

 

광교산 형제봉 능선에 소나무가 살아남은 것은 능선이 바람을 많이 타기 때문에 솔잎혹파리가 왕성하게 번지지 못해서다. 원삼면 두창리 구봉산 자락 7부 능선 위쪽으로 2헥타르의 소나무 군락지가 있는 것도 같은 이치다. 대략 수령 40~50년 된 자생 소나무 단순림이 등산로 옆으로 숲을 이루는데 이는 구봉산 능선이 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용인의 높은 산 능선에서 가끔 노송을 만날 수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급격한 개발과 함께 사라져버린 소나무도 많다. 경희대 주변은 화성 동탄신도시 때문에 노송이 많이 사라졌다. 양지 청소년수련원 앞에도 노송이 많았는데 물류센터가 들어서면서 사유림이 사라지게 됐다. 그나마 전원주택 주민들이 주장한 덕분에 다소 남아있어 다행이다. 외지에서 들여온 소나무가 억대의 멋진 낙락장송이라 하더라도 태생부터 용인의 토양에 굳건히 뿌리내리고 있는 독야청청 소나무에 비할 바가 못된다고 생각한다. 요새는 기후온난화까지 더해 소나무가 멸종위기에 처했다고 하니 용인의 노송이 더욱 애틋할 따름이다.

 

조선시대는 유교국가였던만큼 4군자에는 빠져있지만 소나무가 덕과 충의 상징으로 귀한 대접을 받았다. 군자의 품격을 지닌 소나무의 송(松)자는 공(公)자가 있어 나무 중 윗자리며 어른이다. 조선시대는 송정(松政)이라고 해서 소나무 숲을 정책적으로 보호했으니 오늘날보다 더했다. 국가적으로 거북선 같은 군선이나 궁궐, 사찰의 주요 목재였던만큼 속이 누런 황장목같은 우량 소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황장금표를 세워 함부로 출입도, 벌목도 금했다.

 

소나무에 대한 사랑은 조선의 법전인 경국대전에 소나무 이용 및 보호, 조림 정책에도 찾아진다. 조선후기에는 방화와 도벌 관련 형법을 강화해 고의로 불을 지른 경우나 큰 소나무 10주를 몰래 벌채할 경우 사형에 처했다니 사람의 목숨보다도 귀하게 여겨졌다. 최근 건조한 기후에 실수로 인한 산불이 전국에서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숲에 자라던 노송도 한 줌 재가 됐을 터인데, 과연 조선시대였다면 어떤 처벌이 내려졌을까.

 

소나무는 오래 살아 십장생 가운데 하나다. 미국 캘리포니아 화이트산에는 수령 4600년이 된 브리슬콘 소나무가 살고 있으니 가장 오래 사는 나무다. 그래서 우리는 태어나면 금줄에 솔가지를 매달고, 죽으면 송판으로 널을 만들며, 무덤둘레에 도래솔을 심어 생전은 물론 사후 영생까지 빌었다. 무덤을 둘러싼 소나무를 도래솔이라고 하는 것이 돌아온다는 말 같이 들린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우리나라 전체가 자생소나무였다. 요즘같은 리기다소나무가 아니다. 소나무는 우리 민족과 동고동락을 함께 한 나무로 땔감부터 송진, 송화 가루, 소나무껍질, 솔잎 등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베풀었다. 어렸을 때 송화다식이 그렇게도 맛없더니 요새는 솔향 머금은 노란색 다식의 품격에 푹 빠져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