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공자께서 노나라 대부이자 권신인 계강자와 차담을 나누던 중에 위나라 영공이 무도하다고 말하니 계강자가 “그런 자가 나라를 잃지 않는 까닭은 무엇입니까?”라고 되물었다. 이에 공자는 “외치인 외교의 일은 중숙어가 담당을 하고, 내치인 종묘사직의 일은 축타가 담당을 하고, 군대의 일은 왕손가가 담당을 하니까 나라를 잃을래야 잃을 수가 없다”라고 했다. 사실 위령공은 암군이고 혼군이 맞다. 하다못해 제 처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도, 과거에 어떤 여자였는지도 모르는, 그런데 나라 안 백성들은 걱정 없이 편하게 잘 먹고 잘살 수 있다는 데 있다. 그가 재임한 기간이 장장 42년이나 된다. 백성들은 그가 40년 동안 왕 노릇을 해 먹든 말든 관심도 없다. 왜냐면 지금도 충분히 잘 먹고 잘살고 있으니까. 이게 위나라 영공의 이해 불가한 단면이다. 분명히 머저리가 맞는 거 같은데 나라 안 백성들은 잘 먹고 잘살기 때문이다. 설원 8권 존현편에 내용을 여타의 전적과 연의해서 풀어쓴다면 이렇다. 노나라 군주 애공이 공자에게 묻기를 “오늘날 군주 중에 누가 현자입니까?” 그러자 공자는 말한다. “위나라 영공이 현자입니다.” 어째서 현자냐고 물으니 “사람을 쓰는데 탈
[용인신문]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개인 윤리를 정치로 꽃피운 것이 ‘수기치인’이다. ‘수기’라는 것은 말 그대로 나를 닦는 일이다. 여기에는 도덕적 닦음과 학문적 공부를 내함한다. 이를 갖춘 자만이 남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 다스린다는 것은 백성의 입장에서 백성을 위하는 일이다. 그야말로 논어에서 말하는 정치의 요체가 아닐 수 없다. 사실 공자의 유학은 민주주의라고 말하기는 곤란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백성을 위하는 정치를 말하고 있다. 백성을 위하고자 하는 치자의 덕목이 어찌 한 둘 이랴마는 백성을 손아귀에 넣어 호령하겠다는 자세는 여기에 들지 않는다. 마음은 겸손할 것이며, 행동은 신중할 것이며, 무엇보다도 나 아니면 안 된다는 고집은 버려야 한다. 고래로 많은 이들이 백성을 위한다며 치자의 길로 들어서지만 대부분 백성의 짐이 되어 저와 가족과 측근 몇몇만이 부귀영화를 누리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다. 이러한 이유는 저들의 배움이 짧아서도 아니고, 그렇다고 태생이 그릇되거나 모자라서도 아니다. 공자의 군주론에는 이를 치자의 ‘미련함’이라 했다. 진효공 영거량을 도와 진나라를 법가의 토대 위에 올려놓은 상앙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나라를 다스리는 데는 법의
[용인신문] 관이 수탈과 폭력을 일삼으면 백성은 견디다 못해 들고 일어난다. 고래로 백성의 삶은 늘 힘든 현실이다. 여기서 백성이 할 수 있는 일은 권세 있고 귀한 자들을 무서워하는 일이 전부다. 괜히 우쭐하여 저들의 눈 밖에 났다가는 그날 저녁밥 맘 편히 먹기는 어렵다. 강자를 누르고 약한 자를 돕는다는 참으로 달콤하기 이를 데 없는 말은 고전의 경전 속에서나 죽어 간지 오래다. 그래서 백성의 일이란 의무적으로는 영토 안에 살면서 의무를 다해야 하며 권리적인 면에서는 영토밖에 거하는 성문 밖 백성인 것이다. 자고로 백성이 가난한 것은 뭐라고 둘러댄다 해도 임금의 무능이 맞다. 공자님 훨씬 이전 시대의 이야기이지만 한때 임금님 따위가 나에게 무슨 소용 있으랴, 이렇게 잘 먹고 잘살고 아무 근심이 없거늘, 하면서, 땅바닥에 드러누워 손가락 톡 톡 튕기며 격양가라는 노래를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고 글 속에는 전한다. 참으로 꿈같은 소리 임에 분명하리라. 어쩌다가 정치가 백성을 잘 먹고 잘살게 못 하는 정치가 된 걸까. 노자는 도덕경 27장에서 이렇게 말한바 있다. 사람은 사람대로 쓰임이 있고, 그릇은 그릇대로 쓰임이 있나니 이를 잘 알아서 사람이든 그릇이든 그 용
[용인신문] 이 땅에 두 개가 많다. 첫째 악인이 많고, 둘째 신神이 많다. 악인이 많은 것이야 법의 영역의 문제일 될 터이고, 문제는 신이 많다는 데 있다. 고래로 귀신장사는 망하는 법이 없다 했다. 사람이 사람에 인정받지 못했을 때 기댈 마지막 보루가 신이라 했다. 구약시대에 유대 땅에 전해 내려오는 열 개의 계명 중에 첫 조항은 ‘나 외 다른 신을 두지 말라.’ 이다. 상당히 완고할 것 같으면서도 원칙주의자적인 말 임이 분명하다. 참 웃긴 게 지금까지도 유대인들은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나 외 다른 신을 두지 않고 여태껏 잘 살아가고 있다 한다. 여기서도 한 가지 외통수는 있다는 거다. 기독교 경전에 따른 용어인 신약 사회에 오면서 예수라는 불세출의 인물이 태어난 거다. 마씨 성을 가진 대략 십 오륙 세쯤 하는 처녀의 몸을 빌려 이 땅에 왔다. 그렇게 오신 그 사람을 향해 그들의 경전은 이렇게 기록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예수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이것을 세상은 삼일육복음이라 한다. 요한복음 삼 장 십육 절에 기록된 말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이 두 개가 있는데 첫째 영생을 얻는다
[용인신문] 유가의 선비 공부에 절대로 마주하면 안 되는 공부는 이단 공부요, 사이비 공부요, 사문난적 공부다. 혹여라도 이 셋 중에 어느 한 개라도 만나면 그것이 무엇이든 우선은 줄행랑부터 치는 게 상책이다. 괜히 우쭐한 김에 나서서 바꿔보겠다거나, 이겨보겠다는 마음으로 상종했다가는 멸문의 화를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리라. 고래로 진실은 거짓을 이길 수가 없다. 물론 세상 사람들이 말은 그렇게 하지, 진실은 언젠가는 이긴다고. 맞다. 여기서 방점은 ‘언젠가는’이다. 곧 “내 살아생전에는 이기지 못한다”로 읽혀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공자님께서는 “이단을 공부하면 몸에 해로울 뿐”이라고, 이미 2500여 년 전 논어에다 말씀하셨다. 성인께서 힘주어 말씀하시면 후학들은 그 말씀을 한 번쯤 귀담아들어 볼 필요가 있다. 하루는 제자 자로가 죽음을 물으니 공자께서 이렇게 답한다. “사는 것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까지 알겠느냐?”고. 천고에 이보다 더 훌륭한 말씀이 또 있으랴. 말씀은 대단히 점잖으신데 그 함의는 비수 끝보다 예리하다 하겠다. 풀어 말하면 “살기도 바쁜데 어찌 죽은 다음 날까지 걱정하겠는가?”이다. 주자께서는 주자 전서 권20공호이단 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용인신문] 두 갈림길에서 선한 길을 놔두고 선하지 못한 길로 가는 것을 보고 울었다는 고사가 양자곡기楊子哭岐이며, 착한 것을 놔두고 착하지 못한 것에 물들었음을 보고 울었다는 고사는 묵자읍련墨子泣練이다. 이는 회남자에 기록된 내용으로 유안이 제자백가의 말들을 모아 21권이라는 거질의 백과사전으로 집대성한 책이다. 후대 송나라 때 경학가들은 어려서부터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여기서 찾는다. 선한 것에 물들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15세때 공부에 뜻을 두었다 전하는 공자는 논어 첫 장에서 배운 것을 날마다 학습하라 한다. 이를 그의 제자 증자는 이렇게 실천했음을 밝히는데 ‘나는 날마다 하루 세 번에 걸쳐 나를 살피노라.’ 증자는 자신을 살펴 반성하기를 죽는 날까지 하루 세 번씩 했다는 인물이다. 그는 어째서 하루 세 번에 걸쳐서 자신을 반성의 고삐로부터 자유롭지 않게 했을까. 그가 써놓은 대학이라는 책에서 그 답을 찾아볼 필요는 있다. 경일장과 전십장으로 풀이된 그 책을 관통하는 일관된 주제는 한 줄로 요약된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가 그것이다. 몸을 닦고 집안을 가지런히 하며 나라를 치국한 다음에 이르러 평천하를 하라 한다. 이 말이 주는 함의는 상당히 충격적이
[용인신문] 선비들의 목표는 국가의 재상인 정승이 되는 거다. 이를 위해 어려서부터 향리 서당의 늙은 훈장에게서 초학서를 떼고 큰 스승을 찾아가 더 높고 깊게 공부를 한다. 그런 공부가 얼추 지점에 이르면 등과하여 고을 수령이라도 되어 선비의 첫 출사라 하는 치인治人의 길을 걷는 것이다. 이런 자리에 오르기란 어렵기도 하겠지만, 설령 올랐다 해도 여차한 일로 인해 사화에 휘말리거나 한다면 인생 절딴나는 건 시간문제다. 하여 그런 자리에서 무탈하니 평생토록 몸을 보전한 선비는 그리 많지 않다. 이러한 선비들이 수신과 치국서의 제 1덕목으로 삼는 책이 곧 논어다. 공자의 말과 생각이 가장 많이 기록되어 있어서다. 어찌 보면 논어는 정치서라 해도 될 만치 정치에 관한 문답이 많다. 다산 논어고금주에 따르면 정치는 윗사람이 백성을 올바르게 다스리는 것이라 했다. 그 올바르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반듯해야 한다고 부언한다. 참 어려운 얘기인 것만은 분명하다. 주머니 털어 먼지 안 나는 사람 어디 있으랴, 모두 적당히 때 묻은 공범들 인 듯 서로를 위안 삼고 사는 세상이라지만 백성을 다스리는 위치에 있다면 그래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글 속에서나 있는
[용인신문] 일찍이 공자는 자신의 공부 벽을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열 가구쯤 되는 마을에 충성되고 신뢰 되는 사람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부를 나만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공부에 관한 한 하늘을 찌르는 자부심이 아닐 수 없다. 섭땅의 군주 섭공이 자로에게 물었다. 그대의 스승 공자님은 어떤 분입니까? 자로의 생각에 공자의 인품이 워낙 훌륭하셔서 자로가 뭐라 한마디로 딱 잘라 말하기가 어려워 아무 말도 못 하고 물러 나와 공자께 일을 고하니 공자께서는 대단히 서운하시다는 듯 당신을 거듭 변명을 하셨다. 너는 어찌하여 너의 스승의 사람 됨이 공부를 하고자 애씀에는 먹는 것도 잊고, 공부해서 알게 되면 그 즐거움에 근심도 잊으며, 몸이 늙어가는 것도 모른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그런데도 이토록 공부를 좋아하고, 또 공부를 많이 했지만, 군주나 대부를 제외한 일반 범부들 사이에선 공자를 그리 알아준 것은 아니었다. 하루는 공자의 수제자 자로가 석문에서 하룻밤 유숙하고 새벽을 나서는데 “어디서 오는 길이오?”라고 석문지기가 물으니 자로는 답하길 “공 씨 계신 데서 오는 길입니다”라고 했다. 이에 석문 지기가 말한다. 아하. 안되는 줄을 뻔히 알면서도 해대는
[용인신문] 요 임금은 나라 다스리기를 자신보다 백성을 더 잘 위하고 더 훌륭한 성군을 찾고자 평생을 애쓴 인물이다. 그렇게 천하를 돌아 찾아내고자 애를 쓰니 당시 현자라 불리는 피의와 설결과 왕예 여타의 현자들이 입을 모아 한 사람을 천거하는데 허유라는 사람이다. 그의 사람됨은 의에 근거하여 방정하며, 나쁜 자리엔 앉지 않으며, 나쁜 음식은 먹지 않는 것으로 몸을 온전히 보전한 인물이다. 이처럼 천거와 소문을 들어 알게 된 요임금은 천하를 허유에게 선양하고자 찾아가 말하길, “나는 부족한 사람이라 허유께서 임금이 되시면 천하는 절로 다스려 질 터이니 청컨대 천하를 맡아 주십시오.” 라고 말했다. 이에 허유가 “나는 임금 자리든 천하든 다 쓸모없으니 요임금께서는 그만 돌아가시오.”라며 화들짝 놀라 달아났다 한다. 여씨춘추에 따르면 하루는 순임금께서 요임금은 어떻게 천하를 다스렸는가를 알고자 요임금의 스승이던 선권을 찾아가 물으니 선권은 요임금을 평하길 “천하를 다스림에 가르치지 않아도 백성이 그를 따랐으며, 권면하지 않아도 천하는 평화롭고 백성은 안정되어 크게 말하거나 억지로 함이 없었으니 백성으로부터 원망의 소리도 없었다.”고 했다. 이에 순임금은 크게 깨
[용인신문] 하루는 공자께서 제자 칠조개에게 벼슬에 오르라 하니 칠조개는 벼슬하기에는 아직도 배움이 부족하다며 한발 물러섰고, 또 공자 생전에 벼슬에 나선일이 없다. 이런 제자를 두고 공자께서는 자신을 잘 안다며 기뻐하셨다는 게 논어가 전하는 말이다. 공자께서 직접 제자를 콕 집어 벼슬을 하라고 한 예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공문에서 정치에 발군인 제자는 두어 서넛 되는데 민자건과 염구이다. 민자건은 정치력도 출중하지만, 특히 덕행에 뛰어난 인물이고 덕행은 모자란듯하나 정치력이 뛰어나기로는 염구다. 두 사람은 공자의 빼어난 제자로서 후대에 두고두고 비교되는 인물이다. 스승 공자의 명예를 실추시킨 인물을 들라면 염구를 드는데 그는 스승의 가르침보다는 자신의 출세와 명예를 세우는데 사활을 건 인물이다. 그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초기의 염구는 훌륭한 제자였다. 논어 곳곳에 그는 겸손했고 자신의 한계를 분명히 아는 그런 제자였다. 공자도 그런 제자를 기특히 여겨 믿고 노나라 실세 계씨에게 추천했는데 권력의 맛을 본 후 염구는 빠르게 진화되어갔다. 소극적이고 소심했으며 오로지 스승 공자만이 최고라며 열심히 따르던 그가 공자는 지는 해라는 사실을 알고는 누
[용인신문] 어느 시대에나 백성들은 큰 것을 바라는 게 아니다. 그저 아침에 일어나면 집을 나서 일터로 가고 해지면 돌아와 가족 모두가 온순 도순 저녁을 함께한 후 아무 걱정 없이 발 뻗고 잠잘 수 있는 것이다. 그 정도면 백성들은 여타의 것들에 대해 크게 욕심내는 일이 없다. 맹자는 이를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백성들에게 일을 주되 위로는 부모 섬기는 데 충분하게 하며, 아래로는 처자식을 먹여 살리는 데 충분하게 하라.” 이게 이천 삼백 년 전쯤 왕이 통치하던 시대에 했던 말들이란다. 본래 백성들을 못살게 한 왕들은 대부분 비명횡사하던가 쫓겨나 밟히거나 한다. 훌륭한 정치란 백성들이 어려움을 몸으로 체감하지 않으면서 잘 먹고 잘사는 거다. 옛날 어느 시대에 격양가라는 노래가 있다. 땅바닥에 드러누워서 손가락으로 자신의 배를 까딱까딱 튕겨가며 흥얼거리는 노랫가락이다. 내용은 간단하다. 나라 임금이 내게 무슨 소용이랴. 이렇게 잘 먹고 잘살다 보니까 도대체 임금이 누군지도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맹자는 말한다. “왕이 홀로 즐기고, 그들만 배부르고, 등 따뜻하면서도, 백성을 구호하지 않는다면 백성들은 그를 원망할 것이며, 왕의 그 즐거움은 길지 못
[용인신문] 진나라 시황제의 몰락과 함께 천하 통일굿 진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한 장본인 두 사람을 들라면 아마도 재상을 지낸 이사와 환관 조고를 비껴갈 순 없으리라. 이사는 한비와 더불어 순자 문하에서 공부한 명실상부한 법가다. 환관 조고 또한 법가다. 조고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는 환관만이 갖는 정보력(?)이라든가 환경과 처지가 아닌 통어옥법通於獄法이라는 법을 위반한 자는 지위고하를 무론하고 옥법獄法에 따라서 형벌을 가한다는, 듣기에 따라서는 그럴듯한 명분임에 분명한데 그럼에도 그에 대한 역사의 평가가 후하지 못한 이유는 자신이 먼저 바르지 못하다는 데 있다. 저한테 유리하도록 법을 끌어다 쓴 악행 때문이다. 그것이 고사로 전해지는 것이 바로 저 유명한 ‘지록위마持鹿爲馬’의 고사이다. 세상은 이를 법비라 불렀다. 여기서 비는 도적놈이라는 의미가 있다. 쉽게 말해서 법을 아는 도적놈이라는 말이다. 본디 백성은 그냥 놔두면 알아서 잘들 살아간다. 그런데 꼭 저런 것들이 나서서 감 놔라, 배 놔라 하니 백성들의 삶이 더 꼬이게 되는 것이리라. 자신과 그를 둘러싼, 더러는 바르지 못하면서 누군가를 잡아다 벌을 준다면 참 머쓱한 일임이 분명하리라. 사람은 바른길을 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