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초나라 사신 괴철蒯徹이 말한다. 항우와 유방의 양자대결 속에 누구도 한신 대장군의 세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이때에 한신 대장군께서는 지금 나라를 창업하시어 중원을 유방의 나라, 항우의 나라, 그리고 한신의 나라, 곧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를 내놓는다. “만약에 지금 나라를 세우지 않는다면 한신 대장군께서는 누가 통일하든 천하통일 뒤에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괴철이 돌아가자 한왕의 사신으로 와있던 유방의 참모 육가陸賈가 나서서 말한다. “한신 대장군께서는 바닥부터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러한 사실은 천하가 다 아는 일입니다. 이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과 하늘의 뜻이 맞았다는 증거입니다. 앞으로 한신 대장군께는 두 번 다시 이런 기회는 없을 것입니다. 이쯤에서 만족하시고 괴철의 말을 듣지말고 유방과 인신의 절개를 져버리지 마소서. 유방이 승리하면 전쟁도 끝날 것이고 한신대장군께서 할 일이라곤 평생 호위호식만 남았는데 뭘 더 바라시렵니까?” 이때 한신은 고민한다. 천하의 주인이 되느냐, 이쯤에서 만족하고 사느냐. 여기서 한신은 안분지족의 삶을 택한다. 그 결과는 목이 잘리고 사지가 찢겨 죽는다. 단 한 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생을 종친 사내.
[용인신문] 유학자 집안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부분이 경서 공부보다 앞서는 것이 성품 교육이다. 글공부가 사람의 도리를 앞서면 위험하다는 것이 당시 부모들의 생각이다. 자식을 기르면서 사람의 도리를 가르치지 않으면 그것은 부모의 잘못이고, 스승의 가르침이 약하여 사람의 도리를 행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스승의 잘못이다. 부모와 스승이 가르침에 게으르지 않았음에도 사람의 도리가 몸에 익혀지지 않았다면 이때는 초달해서라도 가르쳐야 한다. 잘못 가르치면 그 욕은 마땅히 아비에게로 향한다. 대통령의 아들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하는 정부지원금을 수령한 사실로 갑론을박이 분분하다. 그는 해당 기관이 정한 규정에 맞게 신청서를 제출했고, 다수 심사위원들의 심사 결과에 따라 소정의 정부지원금을 수령했을 것이다. 그가 지원금 수령 과정에서 위법이라든가 내 아버지가 대통령이라는 아빠 찬스라든가, 그에 상응하는 어떤 뒷배도 활용했다거나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롯이 제힘만으로 투명하고 정당하게 그리고 치열하게 모든 절차를 진행했을 것이다. 다만 아버지가 그 시점에 대통령의 자리에 있었다는 억울한 굴레가 덧씌워졌을 수도 있다. 후한서 원소열전 주석에 원소는 어려서부터 외모가
[용인신문] 맹자가 경전의 반열에 오른 것은 오로지 송나라 학자 주자의 공이다. 천하통일국 진나라 시 황제 때 분서갱유라는 악명으로 다양한 종류의 유가서들이 불태워 지지만 맹자는 열외 된다. 말 한마디면 백성들을 죽이고 살릴 수 있던 절대군주 시대에 맹자의 가르침은 위험하기 짝이 없던 탓에 유가에서 그리 드러나지 않았던 책에 불과해서다. 맹자의 가르침은 대략 세 개로 압축된다. 첫째, 백성은 임금보다 우선한다는 역선逆先. 둘째, 백성의 비위에 안맞으면 임금이라도 그 자리에서 끌어 내려야 한다는 역위逆位. 셋째, 도덕적으로 흠이 보이면 언제라도 임금의 목을 쳐서 성을 갈아치워야 한다는 역성逆姓. 맹자는 통치자에게 있어서는 결코 백성들이 봐서는 안될 불온의 서다. 군주가 백성을 막 대하면 백성은 임금을 원수처럼 여겨도 된다는 것이 맹자가 가르쳐주는 맹자 독법이다. 그러므로 “맹자를 읽고 군주의 일거수일투족을 직시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맹자를 잘못 읽은 것”이 라는 말이 회자 될 정도였다니 맹자 책은 군주에게 두려운 책임에 분명하다. 그렇다고 맹자책 7권 전체가 다 그렇게 사나운 것만은 아니다. 하루는 맹자가 제자 악정자가 노나라 재상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
[용인신문] 글씨가 사람을 평가하던 시대가 있었다. 글씨는 바른 글이라 하여 ‘해서’를 으뜸으로 친다. 선비로서 서예가가 아닌 오로지 문장의 글씨체. 해서체로 일가를 이룬 인물을 꼽는다면 미수 허목이 지존이다. 노년의 우암이 몸에 고질병이 들어 노복을 보내어 정적 미수에게 처방전을 부탁했다. 미수는 어디를 가던 길이라 노상에서 선채로 걸으면서 노복에게 우암의 병증을 듣는대로 처방전을 써준다. 왼손바닥에 갱지更紙를 놓고, 오른손으로 붓끝을 잡고 팔꿈치가 닿지 않은 상태에서 걸으면서 약방문을 써서 건네주었다. 노복으로부터 약방문을 받아든 우암은 갱지 글씨가 워낙 빼어난지라 미수가 집 서안에 앉아 쓴 줄 알고 안부를 물으니, 노복으로부터 약방문 쓴 경위의 전후 사정을 듣게 된 우암은 원본은 자신의 옷 소매 속에 넣어두고 필사본을 써서 노복에게 주어 약을 지어오게 했다 전한다. 글씨가 그만큼 빼어났다는 말이다. 걸으면서 바른 글씨 써내기란 여간한 것인데 미수가 그것을 해낸 것이다. 이른바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걸으면서 쓰되 점이든 삐침이든 파임이든 단 한 획이라도 흔들림이 없는 그런 글씨. 그런 글씨를 우암은 생전에 본 것이다. 우암은 어려서 10년이
[용인신문] 청나라 말기 어느 고위 공직자는 논어 한 구절을 먹으로 지운 채 읽었다 하는데 다름 아닌 논어 안연편12-18문장이다. 하루는 노나라 정치 실세 계강자가 공자에게 답을 구한다. “도적들이 낮밤을 가리지 않고 나대는 통에 국가를 운영할 수 없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가 요지다. 계강자는 첩의 아들로 본처의 자식을 죽이고 권좌에 오른 악질로 전횡專橫과 주구誅求로써 군주보다 훨씬 많은 부를 쌓은 인물이다. 이를 모르지 않는 공자는 앞뒤 볼 것도 없이 일언지하에 그것도 아주 그악스럽게 말한다. “네가 욕심부리지 않으면 설령 상을 준다고 해도 백성들은 훔치지 않을 것이다.” 이 말에 대한 해석이 논어 옹야편 6-16문장에 나오는데 질이 문보다 승하면 거칠면서 저속하게 되고, 문이 질보다 승하면 사치스럽다. 그러므로 문과 질을 조화롭게 한 연후에야 군자라 할 수 있다. 쉽게 말해서 깜냥도 아닌 것이 글깨나 배웠다고 벼슬만 높아 가지고 깜냥이나 되는 냥, 세상 그렇게 함부로 사는 거 아니라는 공자가 계강자에게 주는 독설에 가까운 경책이다. 이 말에 대한 사마천식 해석은 이렇다. 사마천 사기 상군열전의 기록이다. 법이 지켜지지 않는 것은 위에 있는 것들이
[용인신문] 정치란 모든 국민을 편안하고 잘살게 해주는 것, 그게 정치다. 그럴 자신이 없다면 그런 사람은 정치판에 발을 들여놓지 말았어야 한다. 그동안 우리는 악마보다 무섭다는 교회 장로가 정치를 하고, 강철 군화를 신은 군인이 정치를 하고 투사가 정치를 했다. 이제는 얼굴이 알려졌다 싶으면 정치판으로 뛰어든다. 그 속에는 부지기수가 이런저런 일로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자들로 가득하다. 예기 책에 이르길 천하 모두는 백성의 것이니 현명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가려서 정치를 맡겨야 백성의 삶이 고되지 않다고 했다. 노나라 정공 14년 56세가 된 공자는 대사구가 되어 법 집행관으로 임한지 3개월이 되자 그의 온용덕화정책이 향리 구석에까지 미쳐 물건을 사고팔 때 속이는 법이 없으며, 남녀 간에 음란한 일이 사라졌으며, 길에 떨어진 물건을 줍지 않아 여행자가 노나라에 오면 관의 손을 빌리지 않아도 잃은 물건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공자세가편에 나오는 말이다. 도불습유道不拾遺라는 말이 있다. 나라가 잘 다스려지면 백성이 사는 게 풍족해져 남의 물건을 탐내지 않는다는 말이다. 물론 형벌이 엄하면 남의 물건에 손댈 엄두를 못낸다는 의미도 있다. 이는 패도시대의
[용인신문] 노나라 실권자 계씨가 자신의 세를 넓히고자 부용국인 전유라는 작은 나라를 무력으로 빼앗으려 하는데 계씨 밑에서 벼슬하고 있던 염구와 자로가 스승 공자에게 전후 사정을 말하며 대책을 구하니 공자는 되려 제자를 꾸짖으며 염구에게 말한다. “군주를 모실 능력이 안되면 그만둬라. 군주가 위태로운데도 붙잡아주지 못하고 군주가 넘어지는데도 부축해주지 못한다면 그따위로 보좌하는 신하를 어디에 쓰겠느냐”(논어계씨편) “신하가 군주를 잘못 모시면 그 피해는 곧 백성의 몫이다.”라는 것이 공자가 제자를 엄이 한 이유다. 관중은 “백성을 편안히 하는 것이 치국의 요체요, 실천으로 경제를 발전시키는 것”라고 직시한 바 있다. 여기서 정치의 근본은 시작된다. 곧 안민安民이다. “백성이 편안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것을 일러 좋은 나라라고 말하는 거다. 유학에서는 이를 ‘수기치인修己治人’이라 한다. 윤리와 도덕으로 자신을 완숙은 아니어도 일정량 경지에 올려놓은 뒤에라야 남을 다스린다는 말이다. 제 한 몸도 건사 못하는 주제에 무슨 남에게 감 놔라 배 놔라 하랴. 한나라 제왕 무제는 번거롭고 자유롭지 못하다는 이유로 종종 황제의 관冠을 쓰지 않고 놀았는데 간관諫官 급암汲
[용인신문] 본래 벼슬이라는 것은 백성을 위하는 자리이다. 벼슬한다고 우쭐대거나 거들먹이거나 혹은 백성들보다 더 호화롭게 산다면 잘못이라 할 순 없겠지만 백성보다 자신의 안위와 영달을 위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는 있다.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끈을 고쳐 매지 말며 참외가 익은 밭에서 신을 고쳐 신지 말라 했다. 남에게 의심받을 행동은 하지 말라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고래로 백성의 삶이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다. 등 따습고, 밥 배불리 먹고, 한데서 잠자지 않고, 여기에 하나 더 욕심을 추가한다면 자고 난 다음 날 아침 일하러 갈 데가 있으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이는 곧 국가의 가장 급선무는 민생이라는 말이다. 민생을 제외한 모든 것은 부차적인 일이다. 맹자의 말 중에 “길을 갈 때 알고 가는 사람을 따라가면 목적지에 덜 힘들면서 쉽게 이른다.”라는 말이 있다. 바꿔말해서 “길을 모르는 사람을 따라가면 목적지에 가지도 못할뿐더러 가는 과정도 힘들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맹자는 이것을 천하를 얻는 방법으로 풀어낸다. 천하를 얻는 데에는 방법이 있다. ‘득천하유도得天下有道’ 백성을 얻으면 바로 천하를 얻는 것이다. 천하를 얻는 방법이 이렇게 쉽다니. 맹자 이
[용인신문] 맹무백이 “자로는 어진 사람입니까?”하고 물으니 공자는 “모르겠다.”고 답한다. 자로는 공자의 수제자로 평생을 함께 해왔는데 스승 공자가 자로를 모른다는 말이 그게 가당키나 한 소린가. 이에 갸우뚱하면서 또 묻는다. “자로는 어진 사람입니까?”그러자 공자는 마지못해 답한다. “자로는 천승지국 나라에 군대 정도는 담당하겠지만 그가 어진지는 모르겠다.” 듣고 있던 자공이 묻는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백성을 잘 먹고 잘살게 해주면서 환난과 고통을 건져준다면 어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하니 공자가 쾌히 답한다. “어질다 뿐이겠는가. 성인이지! 요임금과 순임금도 못한 일이다.” 공자는 인에 대하여 그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 공자가 인에 대해 후한 점수를 주는 데는 논어를 통털어 이 대목이 유일이다. 백성을 잘 먹고 잘살게 해주는 것, 환란과 고통에서 전져 주는 것, 그런 사람을 인仁하다 한다. 앞 전 시대에는 가난은 임금도 어쩌지 못한다는 말로 백성들의 궁핍과 고통을 정당화시키면서 외면해왔다. 그러고는 저들끼리 권력의 끄나풀을 부여잡고는 배불리 먹으면서 부를 물려주는 것으로 벼슬의 백미로 삼았다. 그래서 나온 말이 권력의 진실은 불편하고 역겨운
[용인신문] 만년의 공자가 쓴 춘추春秋는 약 1만 6000여 자의 기록으로 중국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편년체編年體 사서史書다. 이 책은 세 권의 해설서를 갖는데 좌구명이 쓴 춘추좌씨전, 공양고가 쓴 춘추공양전, 곡량적이 쓴 춘추곡량전이다. 이를 춘추삼전이라 한다. 공양전과 곡량전은 애공 12년까지의 기록이고, 춘추좌씨전은 애공 14년까지의 기록이다. 이런 차이는 공자주유철환이후 28세에 입문한(이본엔 25세 입문이라 함) 스승보다 44세 어린 제자 복상卜相자하子夏가 춘추를 제자 곡량적에게 가르치면서 애공 12년조 까지만 가르친 탓이다. 곡량적은 노나라 사람으로 공자의 제자인 자하의 문도로 자하에게서 춘추를 배워 공자의 춘추를 최초로 의義의 관점에서 해석해낸 인물이다. 권력을 틀어쥐고, 그른 것을 숨긴 자는 그 죄가 도망할 곳이 없게 했으며, 백성들을 가난하게 하고 저들만 호위호식하는 군주는 그 이름이 숨을 곳이 없게 했다. 이처럼 춘추곡량전의 해석은 공자가 지은 노나라의 군주들의 행적을 밝히는가 하면 역사를 보는 안목을 의義의 관점에서 보도록 해석을 한 것이다. 공자작춘추설孔子作春秋說이 처음 등장하는 문헌은 맹자다. 맹자 등문공장구하9-7.8문장의 기록은
[용인신문] 정치의 시작은 뭐니뭐니해도 백성의 생업을 안정시키는 데서 비롯되며 환과고독을 돌아보는 것으로서 정치의 첫 의무는 출발된다. 고래로 민심이라는 말이있다. 백성의 마음으로 요즘으로 치면 국민의 마음이다. 서경에서는 민심을 천심이라 했다. 맹자는 이를 민본주의라고 풀어 말한다. 맹자진심장구하편에 이렇게 기록한다. 백성은 귀하며, 사직은 그다음이며, 임금은 하찮다(민위귀民爲貴 사직차지社稷次之 군위경君爲輕) 요즘은 이게 뒤집어져서 말로는 민주라며 국민이 주인이라고 떠들어대기는 하지만 정작 소외받는 것 또한 국민이다. “임금이 가장 귀하고, 백성이 가장 하찮다”가 그것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천하를 얻으려면 백성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이 말은 만고까지는 아니어도 천고의 진리쯤 되는 말이다. 천하 누구도 백성의 마음을 잃는다면 그길로 끝이다. 맹자이루상편의 이 장면은 꽤 서사적이다. 걸왕과 주왕이 천하를 잃은 것은 백성의 마음을 잃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이보다 더 명징한 말이 또 있을까. 백성들이 두 임금의 모가지를 날려버렸다는 말이다. 서경書經 주서周書 채중지명편蔡仲之命篇에 민심무상民心無常이라는 명문이 있다. 백성의 마음은 일정치가 않다는 말이다. 득
[용인신문] 민심을 거스리고 살아남은 정권은 없다. 오만한 정권. 거기다가 무능하면서 도덕적으로 흠결까지 있다면 이런 모질이 삼박자 정권에 대한 국민의 답은 회초리 정도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철인 순자는 자신의 책 순자 왕제王制편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임금은 배, 백성은 물, 물은 배를 뜨게 하지만 물은 배를 뒤집기도 한다(君者舟也 庶人者水也 水則載舟 水則覆舟). 흔히 군주민수君舟民水로 통하는 말이다. 다음 구절은 이렇다. 위衛나라 성후成侯 사공嗣公은 세금도 잘 거두고 술수도 잘 부렸지만 백성의 마음을 얻는 데는 실패했다. 잔여임기 1년여쯤 남긴 문재인 대통령과 집권 여당이 4.7 재보궐선거에서 눈에 확 드러나는 표차로 참패를 했다. 관자管子권21 66편 판법해版法解편은 이렇다. 백성이 화가 났음에도 깨닫지 못한다면 백성은 스스로 갈 길을 도모한다(중지소분衆之所忿 과불능도寡不能圖). 대중이 분노하면 그 어떤 정권도 감당할 수 없다. 촛불로 태어난 문재인 정권이 그걸 벌써 잊었다면 그 정권은 보나마나이다. 명심보감에 맹자의 입을 빌어서 이렇게 경고한다. 순천자 존하고 역천자 망이라. 이는 곧 백성의 마음을 거스르지 않으면 그 정권은 살아남는 거고 반대로